탈원전 후 100% 재생에너지 공급은 가능할까?
프랑크푸르트의 첫 번째 밤은 에어비엔비를 이용하여 한 가정집에서 묵었다. 호스트가 본인의 집을 소개한 글을 읽어봤는데 한겨울에도 방안 기온이 21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며 창문을 열지 않고도 자동 환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 궁금해 집안을 살펴보니 EBERLE라는 회사가 만든 컨트롤러가 설치된 것을 발견했다. 이 회사는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이라는 글로벌 에너지 관리 솔루션 업체의 자회사로 실내 난방과 공기 순환 제어 시스템을 공급하는 업체이다.
EBERLE는 에너지를 최대한 덜 사용하여 실내 공간의 쾌적함을 높여주는 기업이다. 에어비엔비 호스트 집에는 태양광 발전 패널도 설치되어 있어 호스트가 에너지 절감 기술에 관심이 많고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크푸르트 시 차원에서도 에너지 절감과 재생에너지 활용에 관심이 많다. 프랑크푸르트는 1년 동안 에너지 소비량을 10% 줄이는 가정에게 20유로의 보상을 제공하며 여기서 추가로 1 KWh를 줄일 때마다 10센트 유로를 추가 지급하여 에너지 절약을 장려하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50%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 100% 공급으로 탄소배출 0% 시대를 만들겠다고 청사진을 세웠다.
프랑크푸르트뿐만 아니라 독일 정부 차원에서도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적극적이다. 2018년 기준, 독일 전력 생산량 646.0 TWh 중 친환경 에너지 전력 생산은 225.7 TWh로 전체 생산의 35%를 차지한다. 2010년에는 친환경 에너지가 17%밖에 차지하지 않았으나 2011년 탈원전 선언 후 원자력 생산은 줄이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크게 늘렸다. 원자력은 2010년 22% 비중에서 2018년 12%로 줄었다.
[독일 전력원별 전력 생산량]
독일은 전체 전력 생산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5년까지 40~45%, 2050년엔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독일은 왜 재생에너지 기조를 강하게 추진할까? 바로 원전의 위험성 때문이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탈원전을 선언하여 그해 노후 원자로 8기를 즉각 폐기했고 남은 9기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원전 중단 분은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독일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전기요금에 재생에너지 부담금을 소비자에게 부과하여 재생에너지 지원에 힘쓰고 있다. 2011년과 2013년에 부담금을 크게 늘리며 재생에너지 지원을 확대했는데 늘어난 지원금만큼 전력비도 인상되었다.
원전 축소의 대가로 전기요금 상승이 이어졌는데 이에 대한 반발은 없었을까?
다행히도 독일 국민들은 원전 폐쇄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충분했고 전기 요금 인상을 감내하더라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바로 1986년에 발생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기억 때문이다.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이 붕괴되어 방사능 유출 여파가 멀리 떨어진 독일까지 영향을 끼쳤고 2년간 독일 국민은 방사능 피폭 우려로 신선한 샐러드와 유제품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한 독일 국민들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때 또다시 원전에 대한 위험을 느꼈고 탈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을 전력원별로 살펴보면 18년 총 생산량 225.7 TWh 중 풍력은 111.6 TWh로 49%를 차지하고 있으며 태양광은 46.2 TWh로 20%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재생에너지 발전 현황]
바람이 많이 부는 자연환경과 고도화된 풍력 발전 기술 덕분에 재생에너지 중 풍력발전의 비중이 높다. 태양광은 재생에너지 중 비중이 20%에 불과하지만 빠른 속도로 전력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다.
위 표를 보면 가운데 Photovoltaik 부분이 태양광 발전을 의미하는데 2009년 6.6 TWh에서 2018년 46.2 TWh로 약 7배가 증가하며 다른 발전원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다.
※ 풍력발전(내륙과 해양 합산)은 같은 기간 동안 약 3배 증가(39.44 TWh → 111.5 TWh)
풍력발전은 설비투자에 큰 금액이 들고 중앙집중형 발전시스템이지만 태양광은 기업, 개인별로 각자 설치 가능한 분산형 발전시스템이다. 태양광 발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많아질수록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크게 증가할 수 있어 독일 정부는 특히 태양광 발전 지원에 힘쓰고 있다.
설치 비용 측면에서도 태양광은 원가가 계속 낮아지고 있어 발전 유인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태양광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하며 태양광 전력 생산 비용이 화석연료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태양광 그리드 패리티란(Solar Grid Parity)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원가(LCOE)가 전력회사(화석연료 발전 등)에서 전력을 구입하는 가격보다 작거나 동등한 상태를 의미한다.
원가 계산 시 균등화 발전원가(LCOE,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를 계산하여 화석연료와 비교하는데 태양광 발전기간(20~30년) 동안 전력 생산에 발생되는 총비용과 생산한 전력의 총량을 현재가치로 환산하여 1 KWh당 원가를 계산한다.
태양광 원가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 태양광 패널 가격이다. 태양광 패널은 규모의 경제와 기술 발전으로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위 표의 모듈(녹색 부분) 가격은 2010년 이래로 꾸준히 하락 중이며 모듈 가격이 하락함에 태양광 발전 설치 가격도 같이 하락 중이다. 태양광은 초기 설치비용이 많이 들어 대출을 이용하는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금리가 떨어지는 추세이고 태양광 설치가 늘어나면서 관련 금융상품도 많아지며 자본 조달 비용도 감소하는 추세다.
태양광은 석탄이나 천연가스와 달리 전력 생산에 따른 원재료 비용이 들지 않는다. 태양은 무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전력 생산시 발생하는 변동비는 화석연료 발전에 비해 매우 낮다. 또한 지속된 R&D로 태양광 모듈의 효율이 증가하면 일조량이 같더라도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전력 단위당 원가는 더 절감될 수 있다.
화석연료 발전의 경우 앞으로 비용 부담이 증가하는 것도 그리드 패러티를 실현 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2015년 파리 기후 협약으로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을 더 감축하자는 합의가 있었고 이로 인해 석탄 발전과 가스 발전의 가동률이 줄어 전력 단위당 원가가 올라갔다. 그리고 탄소 배출 총량을 정하고 초과 배출 시 거래시장에서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탄소 배출권 가격이 꾸준히 올라가며 화석연료 발전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경우 탄소배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자력 발전 후 폐기물에 대한 처리 문제가 이슈다.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강력한 콘크리트 용기에 폐기물을 보관하는데 여기에 대한 처리비용이 클 뿐만 아니라 쌓여가는 폐기물들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다.
천연가스는 수압파쇄법이 등장하며 셰일층의 가스를 채취할 수 있어 생산량이 커졌는데 이때 물을 많이 사용하는 환경적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석탄발전보다는 덜 하지만 천연가스 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미세먼지도 배출해 환경적으로도 악영향을 준다.
이렇듯 기존 화석연료 발전은 향후 원가적으로 더 부담이 되고 환경적으로도 부담이 되어 재생에너지 발전에게 주도권을 내줄 위기에 처해있다. 이미 독일에서는 발전차액보조금(FIT)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보조금이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보조금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가진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낮은 도매가격에서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기존 화석연료 사업자는 전력거래 가격이 낮아짐에 따라 수익성은 악화되고 정부의 정책으로 원자력 가동률도 줄이니 고정비 부담이 커져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독일의 E.ON이라는 전력회사인데 정부의 재생에너지 지원과 탈원전으로 경영실적이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는 한국전력이 떠오른다)
반면 태양광 관련 기업은 꾸준히 성장 중인데 대표적인 기업으로 한화큐셀이 있다. 한화큐셀은 2012년에 한화그룹이 인수한 독일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을 한 결과, 2018년 독일 태양광 모듈 부문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2017년에는 한국, 미국, 일본에서 모듈 부문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태양광 산업은 정부 지원과 그리드 패리티 달성, 친환경적 이미지를 앞세워 폭발적 성장이 기대되는데 항상 장밋빛 미래만 있을까? 태양광 산업에서는 아직 에너지의 저장 문제가 숙제로 남아있다.
태양광발전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발전이다. 일조량이 충분할 때 최대한 많이 생산을 하고 저장한 뒤,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때(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에너지 저장 기술은 완전하지 못하다.
ESS라고 불리는 에너지 저장장치의 화재 소식이 한국에서 잇다라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 충남 예산에서 발생한 ESS 화재의 원인은 과도한 에너지 저장에 따른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에너지 저장 기술이 발전되지 않는 이상 태양광 발전은 한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들쑥날쑥한 날씨는 안정적 에너지 생산의 위험요인이 된다. 재생에너지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풍력 발전도 바람이 제대로 불지 않으면 에너지 생산을 할 수 없다. 아래 표는 독일의 연평균 일조량과 연평균 풍속 추이를 나타낸 표다. 들쑥 날쑥한 그래프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원전과 친환경에너지 정책은 기존 화석연료 전력 생산을 크게 줄이지 못하고 있다. 탈 원전에 대한 부족 전력량을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채우지 못하니 화력발전 가동률을 급격히 줄이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10년에서 2018년이 될 때 원자력 발전량은 57% 수준으로 감축했지만 화력 발전은 87% 수준으로 밖에 감축하지 못했다. 원자력 발전보다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량이 더 많은 화력발전을 더 한 것이다. 위와 같은 지적에 독일 정부는 2019년 1월 말, 2038년까지 탈 석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20년 뒤에 현재 독일 전력생산의 35%를 차지하는 석탄도 없앤다는 것인데 원전과 석탄 발전을 모두 없애고 재생에너지만으로 유럽 경제 1위 국가인 독일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경우는 전체 전력 생산 중에 약 70%를 원자력으로 충당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원전 의존율을 2025년까지 50%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화력발전소 건립이 필요하다며 반대했다. 결국 2035년으로 기한을 10년 뒤로 미뤘으며 점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려 부족분을 충당하겠다고 했다.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목적에는 원자력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핵 폐기물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원자력은 더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빌 게이츠는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으면서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원전은 최적의 기후변화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며 사용 후 핵연료를 줄이는 원전 신기술(진행파 원자로) 벤처기업인 TerraPower(테라파워)에 투자했다.
진행파 원자로 기술은 우라늄 농축 후 남은 부산물인 열화우라늄을 핵원료로 사용하며 연료 교체 없이 최대 100년간 운용이 가능한 원자로 기술이다. 결국 기존 원자력 발전소들이 핵발전을 하고 남은 폐기물을 활용해서 다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진행파 원자로 기술을 이용하면 최저의 폐기물만 남아 원자력 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진행파 원자로는 핵무기에 사용할 수 없어서 사회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친환경에너지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다. 다만 아직까지 태양광과 풍력에만 의존해서 에너지를 공급하기엔 시기상조이다. 2018년에 IEA에서 발표한 에너지 수요 전망에서 2040년까지 세계 전력수요는 지금보다 60%까지 증가한다고 예상했다. 에너지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시대에 친환경에너지만 의존하기보다 24시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같이 활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태양광 발전이 기술 개발을 통해 패널의 효율이 올라가고 가격이 내려간 것처럼 원자력도 또 다른 도약이 가능할 수 있다. 아직은 친환경에너지와 원자력의 공존이 필요한 시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