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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creat Oct 13. 2019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독일과 터키의 애증의 관계

가까이 오지 마라. 그렇다고 멀어지지는 마라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걷다 보면 케밥집을 많이 볼 수 있다. 독일어로 케밥은 Döner라고 불리는데 구글 지도에서 Döner를 검색하면 곳곳에 케밥집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 자일 거리(Zeil) 주변에 케밥집이 많이 있다

케밥집이 많다는 것은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이 케밥을 매우 좋아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너무 많다면 케밥을 좋아하는 터키인들이 다수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2018년 기준, 프랑크푸르트의 총인구수는 747,848명인데 외국인은 222,621명으로 외국인이 30%나 살고 있는 다국적 도시이다. 이 중 터키인은 25,395명으로 외국인 중 가장 많다. (한국인은 2,492명이 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국적별 외국인 수. 출처:프랑크푸르트 시정부

독일 전체로 봤을 때 터키인은 약 148만 명이 살고 있으며 독일 외국인 중 최다수이다. 이들은 어떻게 독일로 왔고 정착을 하게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2차 대전 이후 시기로 가보자.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미국 중심의 서방세계의 관할을 받는 서독과 소련의 관할을 받는 동독으로 나뉘었다. 서독은 마셜플랜이라고 불리는 유럽 부흥 계획 아래서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전쟁 상처를 복구해 나갔다. 서독은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경제를 부흥하고 있었으나 동독은 그러지 못했다. 동독 주민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서독으로 이탈하기도 했는데 소련군이 이를 막고자 1961년에 베를린 장벽도 건설하고 국경을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며 장벽을 강화했다. 

베를린 장벽. 출처 위키피디아

동독의 국경 관리 강화로 동독에서 넘어오는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서독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초청했다. 초청 노동자 제도는 1955년 이탈리아와 노동협정을 시작으로 생겼는데 규모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1961년 이후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터키와 협정을 맺으며 규모를 크게 늘렸다. 첫해에는 약 6,800명의 터키인이 초청 노동자로 왔는데 1973년 초청 노동자 제도가 중단될 때까지 약 93만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광업, 제철, 기타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독일인과 같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다. (우리나라도 60~70년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피땀 흘려 일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함께 도왔다.)

Photo by Pedro Henrique Santos on Unsplash

원래 초청 노동자는 일정기간 독일에서 근무를 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형태의 제도인데 터키인들은 독일에서 장기거주를 희망했다. 1973년 석유파동이 일어나며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외국인 노동자 공급을 중단하고 외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보조금을 주었는데 본국으로 돌아가는 터키인은 미미했다. (당시의 터키 경제도 오일쇼크 때문에 매우 힘들어서 독일에 거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때문에 당시 서독의 경제 중심지였던 프랑크푸르트에도 터키인들이 많이 살았고 오늘날까지도 터키인들은 계속 살고 있다.


많은 터키인들이 독일에서 살고 있지만 이들의 삶은 고단해 보인다. 2017년도 프랑크푸르트의 독일인과 외국인의 월 중앙값 세전 소득 현황에 따르면 독일인(deutsch) 4,491유로(약 584만원), 외국인(ausländish)은 2,850유로(약 371만원)로 약 1,641유로(약 213만원)나 차이가 난다.

※ 프랑크푸르트는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이다. 외국인이 받는 월 중앙값 세전 소득도 우리나라랑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독일은 세금을 많이 낸다. 월 소득에서 세금과 각종 사회보장료를 내면 평균적으로 월소득의 76%만 내 수중으로 떨어진다. 

출처:프랑크푸르트 시정부

프랑크푸르트는 서비스업(dienstleistungsbereich) 비중이 높은 도시이며 외국인 노동자의 약 96%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위 도표에 G-U에 해당하는 업종이 서비스업인데 독일인과 외국인이 같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더라도 임금이 다르다. 프랑크푸르트 외국인 중 다수를 차지하는 터키인들도 저임금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임금 차별을 받고 있다.

2017년 기준 프랑크푸르트시 직군별 종사자 현황

이들은 임금차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도 받고 있다. 이주 노동자 시절부터 육체노동, 청소부 등 3D 업종에서 일을 하면서 독일인들 사이에서 터키인들은 허드렛일이나 하는 가난한 인종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또한 터키 이주민들이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는 점도 차별을 더 키우는 요소다. 문제는 터키 이주민 2세에서 더 심해졌다. 터키 이주자의 자녀들에게 독일 정부는 교육의 기회에 무관심했다. 1세 이주자들은 독일어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터키인 2세들은 별도의 교육 기관에서 독일어 교육이 필요했는데 이에 대한 지원이 없었다. 또한 2세의 부모들은 일을 나가기 바빠서 독일어 학습뿐만 아니라 자녀의 학습에도 무관심했다. 독일 일간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18~24세 가운데 학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의 비율은 이민자 출신이 12%로 독일인 4%에 비해 높다. 언어부터 학습이 제대로 되지 못하니 학업도 뒤쳐지게 되고 자연스레 가난이 대물림 되었다. 


종교적 이질성도 차별을 키운다. 터키는 이슬람교 국가이고 독일은 기독교 국가다. WZB베를린사회과학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무슬림·흑인 구직자가 받는 취업 거절 통보는 백인·기독교 지원자와 비교해 7% 높다. 

언어와 종교가 다른 곳은 타향살이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독일 정부는 위와 같은 외국인 차별을 감소시키고 이들을 독일 사회로 동화시키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국적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00년 1월 1일부터 독일에서 태어나는 외국인 아동들은 부모 중 한쪽이 적어도 8년 이상을 독일에 합법 거주를 하였고 무기한 체류허가나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독일인이 된다. 다만, 만 24세 전까지 부모의 국적을 포기하고 독일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헌법준수, 원활한 독일어, 무범죄 이력, 스스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능력 등이 필요하다.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은 성인도 8년 이상 합법적인 거주와 위 조건들을 충족하면(본인 국적 포기 포함) 귀화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위 국적법 개정 효과는 미비했다. 시행 첫 해 18만 명이 귀화한 이후 귀화 숫자는 쭉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터키인도 첫 해 82,861명이 귀화한 이후로 꾸준히 감소해서 2017년에는 14,984명밖에 귀화하지 않았다. 바로 국적 포기에 대한 갈등 때문이다. 복수 국적 소유 쟁점에 대해 당시 여당이었던 사민, 녹색당 정부는 우호적이었지만 야당의 반발에 부딪혔다. 외국인을 자국 시민으로 적극적으로 귀화시키는데 아직까지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다.

출처 : 독일 통계청
터키인의 귀화 숫자(맨 윗줄)도 점점 줄고 있다. 출처 Federal Office for Migration and Refugees

독일 정부는 터키의 EU 가입 이슈에 대해서도 또 한 번 선을 긋고 있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독일과 경제적으로 연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도 큰 제약 없이 활발해질 수 있는데 독일 여론은 터키인들이 더 이상 자국으로 유입되기 원하지 않는다. 단순히 터키인이 온다는 것 외에도 이슬람 문화의 유입과 시리아 난민이 유입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2015년 8월 독일 메르켈 총리가 시리아 출신 난민들을 받겠다고 선언한 이후 시리아 출신 난민이 크게 늘었는데 처음의 우호적 여론과 달리 독일 사람들은 난민에 대해 반감이 생겨났다. 2016년 독일 쾰른 집단 성폭행과 2016년 12월 베를린 트럭 사건에서 범죄자 중 일부 난민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독일 여론은 싸늘하게 변했다. 독일 사람들은 터키를 EU에 가입시키면 터키를 통해 난민들이 더욱 유입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독일 내 시리아인 인구수 추이. 출처:독일 통계청

또한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독일에 거주하는 약 148만 명의 터키인에게 독일 선거권이 생긴다. 독일 내 EU 국가에 속하는 외국인은 지역 의회와 유럽의회 선거에 피선거권과 선거권이 있다. 비 EU 국가 외국인은 선거권이 전혀 없으며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으면서도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래서 터키인들을 위한 정책들이 생겨나기 힘들고 차별과 열악한 노동 여건도 나아지기 어렵다.

선거권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Photo by Arnaud Jaegers on Unsplash

독일 입장에서 터키인은 2차 대전 후 국가 재건에 힘써준 고마운 사람들이고 지금도 독일 노동 시장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해주는 필수적인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독일인들은 터키인들에게 거리감 두고 경계를 지으려고 한다. 독일인들은 귀화 이슈와 EU 가입 이슈 등에 냉철하게 판단해서 그 이상은 다가오지 마라며 선을 긋고 있다. 독일과 터키의 관계를 보니 문득 인기 있었던 '해를 품은 달'의 대사가 생각난다.


한가인 曰 "가까이 오지 말라 명하신 것은 전하이시옵니다"

김수현 曰 "멀어지라고 명한 적도 없다! 감히 내 앞에서 멀어지지 마라!! 어명이다"

독일 曰 "터키야 가까이 오지마, 그렇다고 멀어지지 마라"

위 드라마 속에 그 대사는 주인공간의 사랑의 감정과 애틋함이 있지만 국제정치 속에서는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할 때 쓰는 냉정함과 이기심만 있을 뿐이다. 독일과 터키의 애증의 관계는 향후에도 위 대사처럼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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