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밀물(Scratch by DJ Friz)

삶이 감옥 같은, 그리고 모든 것들이 나를 떠미는 것 같기만 한 시간들

by Deadass

지금도, 그때도 온 세상이 나를 떠밀기만 할 때마다 '나 살려주세요, 떠밀려가기 싫어요, 왜 내 인생이라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면서 자꾸 나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고 나의 시간을 죽이기만 하나요'라는 서러움과 궁금증이 나의 하루를 꽉 채울 때 이 하루를 알아준 유일한 노래이다.


밀물

밀물이란 육지로 밀려오는 바닷물인데 삶에서도 밀물이 계속 들어온다. 우리가 직접 세상을 나가기보다는 물이 육지로 들어오듯, 세상이 우리에게 들어와 그 세상에 휩싸여 어디인지도,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항상 떠밀려서 존재하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다. 곡에 담긴 디제이의 스크레치가 밀물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타블로의 벌스들 중 타블로의 목소리가 반복되어 돌고 물이 한 장소에 도는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밀물에 떠밀려가는 삶을 타블로는 비유적인 표현을 써서 묘사했다. 그 비유는 너무나 공감이 가기도 한다.


어항

'위기에 처한 그대, 다 떠밀려가는데, 물결에 저항을 해, 세상은 어항인데'가 이 노래의 문을 연다. 이 가사를 듣자마자 바로 공감이 시작되고 노래에 잠기는 것 같다. 이 세상과 사회의 요구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감옥 같고 나의 의견과 다르지만 나와 상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따르게 되어 갈피를 못 잡고 떠밀려 가기만 해서 나는 어떠한 확신도, 자신감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인위적으로 주어진 요구, 일들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 기준보다 열등한 실력이어서 자기혐오만 쌓여 갔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성인이니깐 나는 떠밀려 가지 않고 나로 그 밀물에 서겠다고 다짐했는데 똑같았다. 대학의 교육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또 미리 공부하고 진로도, 전공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또 난 떠밀려 간다. 아무리 저항하려고 해도 고등학교 때처럼 똑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다. 마치 어항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처럼....


그물

'어느덧 스물인데. 낚싯바늘을 피해 안도의 숨을 쉬네.
세상은 그물인데.'

지금도, 그때도 나의 상황은 이 가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그 나를 낚아채서 나를 오직 대학만 생각할 수 있게 개조하려는 학교와 선생들의 바늘을 피하려다가 너무 괴로워 나 자신을 죽였다. 결국, 낚싯바늘에 낚이고 말았는데 그 낚싯바늘에서 벗어난 날이 생겼다. 그건 바로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그러나 그 졸업식 후에도 변한 게 없었다. 또 공부하고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어른과 주변에 휩쓸려 나의 인생이 정해지는 장면뿐이었다. 낚싯바늘을 피하고 낚싯바늘에 벗어나도 세상은, 사회는 그물이었다. 아무리 자유를 찾으려고 해도 아무리 머릿속에 자유와 나 자신을 그려봐도 나는 언제나 세상이라는 그물에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익사

' 내 꿈이 그대 안에서 dive 익사해, 내 삶이 그대 안에서 dive 익사해' - 꿈과 삶이 바닷물에 빠져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된 상황을 묘사하는 것 같다. 나의 생각과 꿈, 그리고 삶이 송두리째 사회에, 일사에, 시간에 쫓겨 떠밀려 갈 때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나도 안다, 거기서 뭐라도 잡아야 하고 나의 삶과 꿈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근데 삶과 꿈을 잡으면 지금의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몰랐던 나의 삶과 꿈의 죽음, 그리고 그에 대한 상실감을 이 가사가 알아준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지금도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이 가사가 나를 대신하여 내가 위태롭다는 걸, 내가 또 죽어간다는 걸 외쳐준다. 그럴 때마다 안도감이 든다. 내가 남모르게 위태로운 걸 이 노래라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절대로 맞출 수 없는 모순적인 직선

'모든 선을 가로채, 반듯함을 강요해, 직선이 되라고 휘어진 자로 재'이 구절은 지금도, 그때도 삶의 부조리함을 알아주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주어진 건 대학이고 대학에서 주어진 것 오직 취업뿐인 것 같았다. 그걸 반듯함이라 모든 사람들이 규정했고 나의 사유, 가고 싶은 여행, 하고 싶은 것들은 다 그 선의 밖에 있었다. 그 고등학교 3년 동안 할 수 있는 건 선의 밖에 있는 걸 다 억제하고 죽이고 그 선을 강요받고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고역은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학을 가도 무조건 다 잘 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어른들이 하는 말들은 다 모순적인 것 같았다. 언제나 그 선을 따라갔지만 모순적이고 성취감은 계속 사라지고 내 인생의 한 순간이 삭제되기만 하는 것 같은, 어떤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건 모순적인 선이라는 감옥에 갇히는 대답뿐일 때 이 가사가 나를 좀 숨 쉬게 만들어줬다. 나의 모습을 따라가기에는 용기와 힘이 없고 사회와 어른들을 따라가기에는 내가 죽을 것 같은데 그 둘 사이에서 결정할 자격과 시간이 없어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패배감만 쌓여갈 때 이 가사가 처음으로 내 편이 되어준 느낌이었다. 정말로 이 가사는 언제나 인간의 삶에 강요되는 모순과 부조리를 함축한 것 같다.


'사방이 벽인데 벽돌을 얹이면서 등을 떠미네' - 인생 정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갇혀있는 존재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느꼈던 답답함은 해결되지 않고 그 답답함만 늘어가는데 그 아이가 답답함을 해결하려고 질문을 해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고 그냥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남들 다 가는 걸 똑같이 하라는 강요만 받아왔다. 뭔가 더 배울수록, 더 큰 집단에 들어갈수록 더 내가 설 자리는 좁아지는 것 같기만 한... 발은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나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해서 어깨가 무거워져 벽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별똥별

'넌 별인데 어른들의 헛된 소원 때문에 별똥별이 돼'- 정말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가사다. 별은 오래 빛나고 스스로 빛나는 존재지만 별똥별은 약 1초, 일시적으로만 빛나며 소멸한다. 별처럼 산다는 건 아마 스스로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을 되돌아봤을 때 추억이 있는 반면, 별똥별처럼 사는 건 사회와 어른들에게 휩쓸여 연기만 하다가 나의 삶과 나의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별똥별이라는 존재로 살다가 이 가사 나보고 별이라고 처음으로 말해줬고, 내가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도 나에게 별이라 해주지 않았으니.


'너에게 삽을 건네준 손이 손가락질해, 스스로 무덤 판 거래'- 이 가사를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보고 사회와 동화되라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학교 잘 다니라고 했으면서, 노력해라 하면서, 그 말을 들었더니 남아있는 것 몸과 마음이 망가진 나뿐이었는데.. 탓할 게 나밖에 없었다. 이게 내 의지는 아니었는데, 결국 다 내려놓은 건 '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삽을 건네준 그 손은 '다 나 잘 돼라'라고 조언해 줬다는 핑계가 있기에 탓할 사람이 나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공허함만 남은 채, 다 버리고, 다 포기하고 남았더니 나보고 '아직 어린 데 왜 포기해?, 왜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이야기해?'라 묻는다. 마치 내가 내 무덤을 혼자 다 판 것처럼...

같이 떠밀려

이 노래의 훅 부분에 Swim, swim, swim away의 멜로디와 강조되는 스크래치로 진짜 떠밀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세상이 나를 밀 때 그렇게 떠밀려가기 싫었는데, 이 노래로 떠밀려갈 때는 떠밀려가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의 밀물은 세상의 밀물을 잠시 잔잔하게 해 주고 나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뭔가 '네 잘 못이 아니야'라고 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시간과 앞으로의 삶이 정해지고 나는 그 속에서 통제권 없이 밀려가기만 할 때 그런 상황을, 그런 나를 알아주고 알아줄 노래이다.



가사 참고- 타블로- 밀물(Scratch by DJ Friz)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