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 Lesson Zero

'나'의 출구

by Deadass

언제나 나는 답답했다. 누군가와의 대화도, 어떤 배움도, 어떤 집단도 나에게 해방감과 자유가 아닌 지루함, 갇힌 느낌만 준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부족하고 내가 어리니깐 언제나 나의 생각이 하찮은 생각과 말로 여겨진다고 생각해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위 있는 사상가와 학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인용했다. 그러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이 답답함과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노래가 나에게 감옥에서의 출구를 내 어둠 속에서 밝혀주는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이 남긴 메시지가 나를 밝히는 것을, 나를 이끄는 것을, 근데 그것이 감옥이 아닌 해방으로


고요

' Things can change /In the pouring rain/ From the shadows/ See it towering/ Half the light/ Can fade away/ Face your shadow/ Then you follow it'- 낮은, 잔잔한 피아노의 코드 뒤 이어지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 가사를 눈 감고 들으면 어두움 속에서 하나의 빛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들이 어둡기만 할 때, 모든 것들이 나를 옥죌 때 이 노래를 틀면 피아노의 연주가 소란스러운, 답답하기만 한 세상과 시간을 잠재우고 그 속에서 이 부분이 나를 잠깐 동안 세상이라는 감옥 속에 꺼내 타블로의 메시지와 함께 할 수 있게 시동을 걸어주는 듯하다.

이 가사는 이 곡의 중심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세상, 사회, 타인, 종교의 그림자가 아닌 '너의 그림자를 직면하라'는 건 너 자신을 그대로 보고 너의 목소리에 집중해라는 메시지로, '그리고 그걸 따라가라'는 가사는 너 자신대로 살아가라, 너 스스로 사유하라는 메시지로 느껴진다.


'가르침', '교육'- 우리를 못 보게 하는 소음

우리가 받아온 가르침과 교육은 우리가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공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공존의 방법은 획일화였기에 개성을 지우고 그냥 대체가능한 부분이 되게 했다. 내가 조금만 다른 의견을 내거나 다른 생각을 말하면 항상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때마다 어른들과 이 세상은 나만의 튀어나오는 부분을 깎고 잘라서 나를 평면으로 만들려고 했고 실제로 거의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곡의 타블로의 가사는 나에게 엄청난 울림이 되었다. 내 마음속으로 모순이라 생각했던 것들, 이건 가스라이팅이라 여겼던 것들, 여기선 진실도 정의도 없고 그냥 나를 이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타블로가 하나하나씩 읊어 주는데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내가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의 생각은 사람들에게 버려졌고 벽에다 대화하는 것 같았는데 이 타블로라는 사람이 나를 알아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과 이 느낌은 내가 사람으로서 무시당했다는, 버림받았다는 분노감에서 해방되게 하였다.


나를 해방시켜 준, 알아준 이 짧은 가사들을 지금 만나러 가보자.


타블로가 표현한 모순들

종교) 'They teach you to heed the word of a god who has never spoken'-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나는 교회와 맞지 않았다. 고통도, 기쁨도 다 신의 뜻이 있다고 하고 그 걸 나누려고 하지도 않고 그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한 인생을 강요하고 그 신만 바라보며 다른 것들에게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모습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 걸까라는 모순이 있었는데 항상 그럴 때마다 교회는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 '신은 살아 계신다', '네가 믿음이 부족해서', '나는 신을 만났다' 등... 근데 타블로는 '침묵하는 신의 목소리를 들으라 가르친다'라고 이 모순적인 종교의 상황을 단 한 줄로 말한다. 그 속에는 수많은 종교의 모순들이, 내가 겪었던 모순들이 담겨있다. 뭔가 이 가사가 나에게는 우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와 소통할 수 없는 신의 목소리를 들으라 가르쳐 우린 지금의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타인과의 소통과 나와의 소통을 하지 못하고 이 외로움이 고립이 아닌 신을 위한 승리로 포장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법) 'To fear breaking the law when it's already broken'- 이미 부서진 법, 효력 없는 법을 두려워한다는 말, 이 사회를 관통하는 말이다. 사회는 1년마다, 한 달마다 바뀌는 모습을 보인다. 그 변동으로 기존의 규범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이 사회의 체제는 그 변동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떻게 80년대의 법들이 현재의 사회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80년대와는 다른 사회에서 그 오래된 통제의 방법들을 보존하고 두려워한다.


감정)'That to feel is to be weak, to suppress emotion/ So no one sees you had a heart till your chest is open'- 감정을 느낀다는 것, 특히 불안과 우울을 느낀다는 건 이 사회에서는 '나 나약해요'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3월에 우울감이 엄청나게 밀려왔다. 학교에서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스트레스로 속이 아프고 그러다 보니 나도 살려고 나의 감정을 선생님들께 살짝 얘기하면서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서 사회부적응자로 소문이 났다. 내가 힘들다는 걱정은 학교에 퍼져갔고 나를 보는 사람마다 '학교 잘 다니라고, 열심히 하라'는 나에게 건넸다. 근데 그건 그들에게는 나를 응원하는 거였겠지만 실제로는 나를 죽이는 말이었다. 이미 학교에서 죽어가는 사람보고 더 죽어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은 메말라 죽어 갔고 더 나아가 '내가 감정을 느끼는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들고 더 이상 내가 인간처럼, 한 인격체로 보이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냈다가 나약한 존재로,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했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오점이 되어 내가 나의 감정을 못 보게 되어버렸다.


혐오) 'They got you hating who you are to sell you pills and fiction/ Reaching for the stars when you were born up there with 'em'- 저번에 다루었던 밀물에서 타블로는 '넌 별인데 어른들의 헛된 소원 때문에 별똥별이 돼'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가사는 밀물과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정한, 어른들이 정한 목표와 길에 묶여 그것들이 비추는 빛을 받아 살아가는 별똥별 같은 우리를 타블로가 이 노래에서 다시 한번 별이라 말해준다. 우린 그 인위적인 것들을 제외해도 우린 우리의 고유한 개성과 특성들이 있는데 그걸 박탈당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닫지 않는 그 사회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고 그 기준에 밀려났을 때 '나 뭐 하고 살았지'라는 공허함과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된다'는 자기혐오만 남은 상황의 반복을 타블로는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해 준다. 이 부분이 나를 위로했다. 내가 항상 해온 자기혐오, 자기혐오가 삶의 원동력이 돼버려 살아가려면, 학교에서 버티려면 할 수밖에 없었던 이 현실을 타블로의 가사가 알아주고 나의 억울함과 상황을 그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사)'They want you busy stepping to the right side of history/ To keep you from the inside of history'- 어렸을 때부터 흑백논리에 사로 잡혔고 나쁜 쪽이 아닌 옳은 쪽으로 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근데 옳은 쪽이 뭔지도 모르겠고 틀린 쪽이 무조건 나쁜 쪽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틀린 쪽을 가봐 어떤 교훈을 얻을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무조건 남들이 규정하는 옳은 쪽만 따라가고 살아가니 정말 사회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나는 그 속에 살지 못하고 방광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이유는 그 옳은 쪽이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나의 역사가 아닌 잊혀버린 시간, 삭제된 시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발언권) 'Give everyone a voice/ But leash 'em with the mic cord'- 현대 사회는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사회의 가치와 상응할 때 해당된다. 만약 사회의 가치와 조금 다른 말을 꺼내면 바로 발언권은 박탈당한다. 발언권은 있지만 그 발언권은 사회의 입맛이어서 그 발언권이 우리의 의견이 담긴 말들을 짓밟는 모습..

자유롭게 대화하다가 누군가가 그 집단에서는 통하지 않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 정색하고 무시하고 놀리는 모습..


'Feed you things to fight about instead of things to fight for/ Teach you everything you want but noting you need/ That everything's got a price and nothing is free/They'll turn everything to nothing then make you believe/ That everything is under control and there's nothing to see'- 빠르게 나열되는 가사지만 이 가사들은 나의 모습을 천천히 그려주는 것 같다. 언제나 투쟁하라고, 열심히 해라고 하지만 절대로 '같이'라는 말이 아닌 '혼자서'였다. 어떤 소속감도 없이 어떤 소통도 없이 혼자 이겨내라, 그리고 도움을 청하면 나약한 거라 칭하는 곳에서 외로움을 느껴도 그걸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혼자 숨어버렸다. 그리고 나의 본모습을 숨기고 다른 가면을 써 사람을 대하게 되었다. / 외로움 속에서 대화, 소통, 사유가 필요했지만 사회와 어른들은 나에게 나를 공허하게만 하는 것만을 가르쳤다. 마치 내가 필요한 것들은 대학이 다 해줄 것처럼 이상한 사상을 나에게 주입시켰다. 근데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은 알려줘도 또 내가 필요한 것들은 빼앗아갈 것이다. 배움이, 주입이 더 중요하다는 명목으로/ 모든 것들은 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노력을 넘어 '나'라는 사람을, 인격을 지불하는 것이었고 그 대가는 보상이 아닌 지침, 자아 상실과 자기혐오로 돌아왔다./ 모든 것들이 다 통제하에 있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나는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사회의 한 부품이라는 느낌.

뭔가 삶이라는 게 연극처럼 느껴진다. 그냥 내 인생은 벌어지는 상황이고 그 상황에서 통제된 연기만 할 뿐 자율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누구라도 내 인생을, 내 배역을 대체하여 이어갈 수 있다는 것.


Back To Zero

피아노만 있다가 드럼이 들어와 무언가를 깨부수는 느낌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타블로는 이렇게 외친다 - ' No more lessons please/ Take me back to zero/ No more teachers, no more prophets, no more heroes/ Now I see, the question to all answers Will only bring me to my knees/ And back to zero'- 모든 것들은 다 모순이었고 감옥이었다. 더 많이 배울수록, 더 많이 외부의 것들을 주입할수록 나는 계속 사라지고 있는 느낌 속에서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덜어내고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그 본래의 나를 보고 싶은 마음


Lesson 0

에픽하이의 앨범 속에는 Lesson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에는 교육, 종교, 정치를 비판해 왔던 타블로가 이 노래에서 '나로 돌아가겠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 수많은 모순과 수많은 상처 속에서 타블로는 투쟁과 비판을 걷어내고 나의 방식으로 살아감을 이 노래 속에서 그려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나에게 '억지로 더 채워 넣지 말고 본래의 나를 보고 그걸 억제하지 말고 그걸로 살아가라'라고 얘기해 주는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고 강요받고, 지금 하는 건 부족하다고 더 많은 걸 채우고 더 수행해야 함을 강요받아 정말 답답하고 우울한 나날과 감옥 속에서 이 노래가 나를 풀어준다.

마지막 부분을 향해갈 때 타블로의 랩이 고조되고 'No more lesson please'라고 타블로가 외칠 때 눈물이 흘렀다. 내가 속으로 수없이 외쳤던,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그 이후 나는 고등학교 때도, 지금도 이 노래를 항상 듣는다. 이 노래를 통해 잠시 감옥에서 빠져나와 인위적인 것들, 억지로, 꾸역꾸역, 넣고 있는 것들은 잠시 덜어냈다가 다시 감옥 속으로 돌아온다. 감옥은 바뀐 것 없지만 잠시나마 그 피할 수 없는 감옥에서 떠나 이 노래 속에 숨어서 휴식과 사유를 취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노래가 인간관계, 교육, 공부, 사회라는 감옥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 같다. 너무나 많이 사라진 내가 조금이라도 존재할 수 있게


사진 출처:

Epik High (에픽하이) - Lesson Zero Official Visualizer(https://youtu.be/oF8kBwaVYb0?si=nZw-u1Q5Srzlok_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