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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찾아 Apr 10. 2018

가족과 함께 떠난 미국 유학(1)

내가 30대 후반에 유학을 떠난 이유

마흔이 코 앞에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나이가 제법 되었다고 하고, 아직은 한창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28살에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교를 햇수로 9년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취업한 뒤 9년여를 외국계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했고 뒤늦게야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한 주립대학교에서 'Employment and Labor Relations'로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HR, 즉 인사 Huaman Reources를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고 그중에서도 노사관계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학과를 선택하게 된 된 계기는 추후에 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유학을 결정했을 때 주변에 반응은 크게 세 범주로 나뉩니다.


칭찬(진심 어린 격려): 정말 대단하다. 뒤늦게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가족을 데리고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제 사회에서 자리 잡을 나이인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참 멋지다. 너의 생각과 도전을 지지한다.


동의(그냥 동조해주기): 잘 다녀와라. 미국은 참 좋은 곳이겠지? 부럽다. 열심히 하고 잘 되면 나 잊지 마라.


반대: 사실 제 많은 친구 중에 제 생각에 반대를 명확하게 표시한 친구는 단 한 명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술을 마시고 저에게 이야기 하기를 '이제 갓 돌 지난 아기가 있는 가장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누구 고생시키려고 하냐고, 정말 이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술에 취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가족을 데리고 힘든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진심 어린 조언이 아니었나 합니다.


사실 유학은 제게 있어 오랜 꿈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할까?", "정말 인생의 혜안을 던져주는 선생님이 있을까?", "영어를 잘 하면 좋겠다", "외국인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걸까?" 등등은 제게 있어 아주 오래되고 확인하고 싶은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고(사실은 용기가 없었고) 부모님으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이룬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서야 비로소 유학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속적인 수입을 중단하고) 타국으로 떠난 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떠나기 위해서는 내 주변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저 자신마저도 충분히 설득할 타당한 이유들이 필요했고 또 그것을 실행할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돈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지금도 하루하루 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말 무식하고 무지할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 삶이 이렇게 고단한 것인 줄 알았더라면 태어나지 않기로 결정'했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전혀 어떤지 모르고 용감하게 이 세상과 마주했고, 벌거숭이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삶을 살아내고, 그 삶 안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암튼 저는 정말 유학생활이 어떠하게 될지에 대해 너무나도 몰랐기 때문에 용감하게 한국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뒤늦게 유학을 떠난 이유


1. 타 언어의 중요성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하나의 도구 정도로 인식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잘하면 외국인과도 쉽게 말을 하고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능력을 인정받고 요긴하게 사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게 언어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창문과도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이라는 단일 문화권에 사는 사람은 한국 안에서 태어나고 죽습니다. 물론 해외여행도 보편화되어 수십 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그것은 삶의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은 결국 한국 문화권 안에서 태어나고, 경험하고, 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중국어를 능통하게 한다고 가정하면 70~80년의 인생을 살면서 저는 두 나라를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문화, 역사를 공부할 수도 있고 대중문화의 흐름도 볼 수 있고 관심이 있다면 사업(혹은 취업)도 할 수 있고 중국인 친구도 사귀게 되는 것이지요. 


현시점을 기준으로 영어는 중요합니다. 너무나 흔히 쓰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각종 연구와 통계가 어마 무시하게 많아서 영어를 실제로 배우게 되면 미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통해 연구된 많은 나라들을 또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외국어, 특히 영어는 너무 중요한 언어였습니다.


2. 인생은 여행

제가 20대를 지내던 시절에 봇물처럼 터져 유행하던 것이 부부가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을 갓 한 부부가 모든 일을 그만두고(혹은 신혼여행으로) 적은 돈으로 세계여행을 했다는 식의 사례가 굉장히 유행을 했었습니다. 지금 와서는 그것이 환상이었을깨 유익이었을까 고민 지점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저도 매혹적으로 느꼈었고 인생을 누린다는 차원에서는 적극 공감했습니다. 


저는 보통 외국 여행을 가면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기보다는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시장에 가보고 오래 머무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이런 여행 스타일이라면 저는 유학도 여행이 될 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보통 해오던 여행보다는 약간 더 긴 여행이 되겠지만요. 낯선 곳에서 집을 구하고, 시장엘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것이 제게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어떤 부부는 3천만 원을 들고 1년을 온세계를 여행한다는데, 나는 그 돈으로 미국에서 한 지역에서 길게 여행을 해보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 공부도 좀 하지. 지금은 그게 실현이 되었고요. 재미있지 않나요? 어떤 사람들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삶을 크로키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저 같은 사람은 세계 어딘가에 눌러앉아 캔버스를 놓고 유화를 배우고 그리는 겁니다. 제 성격상 수많은 크로키보다는 진득하게 그려낸 유화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3. 자녀 교육

이것도 사실은 미국에 유학을 오기 위해 억지로 제 자신을 설득할만한 이유를 만들어 낸 것이긴 합니다만 다른 분들에게는 요긴할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학생(F1 비자)으로 오게 되면 자녀(F2 비자, 동반가족 비자)들은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 자녀를 홀로 조기유학도 보내는데 나는 그냥 내 공부하면서 아이들은 안전하게 해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지요. 현재 3세가 되어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 첫째가 영어를 잘 배울지 의문입니다. 프리스쿨에 보낼 나이도 아니어서 힘들게 아내가 집에서 키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5~7세 사이의 아이들이 미국에 오면 영어가 굉장히 빠르게 는다고 합니다. 석사 기준으로 2년 유학한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타국 문화를 경험하고 외국어를 배우기 좋은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국을 떠날 때 '더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어야 하는데'하면서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평은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같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불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현실에 감사하면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4. 한국 직장 문화의 회의감

쉼이 필요했었습니다. 한국의 일터는 고단합니다. 저도 모르게 퇴근 시간에 맞춰 들어갈 때면 너무 익숙하게 "죄송한데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요. 항상 상사 눈치를 보면서 퇴근을 조정했던 적도 많았고요. 저는 야근이 힘들게 느껴졌었고 오히려 근무시간 내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또 가족과의 시간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유학을 떠나기 전 저는 결혼을 3년간 한 상태였으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아, 내가 정말 결혼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7시면 회사로 출근해야 합니다. 또 정말 일찍 집에 와야 7시 반, 야근이 있거나 회식이 있으면 더 늦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집에 와서 한 2시간 아내 얼굴 보다가 또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듭니다. 주말은 어떤가요? 결혼식, 돌잔치가 줄을 지어 예약이 되어 있어서 토요일 오전에 늦잠을 자고 싶지만 피곤한 몸을 일으켜 단장을 하고 경조사에 가야 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또 다른 여유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실 결혼을 했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하루 3~4시간이 고작이었던 겁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내가 진짜 결혼을 했고, 한 가정의 가장이고, 남편이자 아빠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느낌은 정서적으로 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사실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이유를 붙였지만 이것이 제 유학의 결정에 가장 큰 이유지 않았을까 합니다.


5. 재학습을 통한 발전

저는 유학할 때 전공을 결국은 제가 하던 일인 '인사'관련 분야로 정했습니다. 저는 음악에도, 영화에도,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결국은 제가 해오던 일을, 그리고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회사는 학교가 아닙니다. 저는 학부 때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을 국내에서 공부했습니다. 인사 혹은 비즈니스 전공은 아니었지요. 회사에서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는 하지만 왜 그런지 원리를 잘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가르쳐 준대로 일을 해 왔고, 필요하면 부가적인 공부를 했고, 스스로 깨우치는 부분들도 생겨서 어느 정도 가늠하기는 했지만 왜 인사팀에서 현재의 실행방식들을 채택하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예: 급여지급 방식, 면접 방식 등등). 석사학위를 공부하면서 이 분야의 역사와 학문적 지식을 쌓아가면서 왜 그런 실행 방식들이 생겨났는지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원리를 이해하니 적용점들도 발견되기 시작하였고요. 개인적으로 학문적으로 성공할 목적이 아니라면(연구원이 되거나 교수가 되거나) 직무경험 후에 석사 공부를 추가로 하면 학습효과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본격 유학 장려 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지만, 30대 지나서의 유학은 득(得)이 있다면 실(失)은 상당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여행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리고 한 곳에서 진득하게 사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신다면, 아직 눌러앉기보다는 한 발자국 떼어낼 용기가 있다면, 도전해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이 글은 본격 유학 장려 글이 아닙니다. 지극히 제 경험에 비추어 본 자기성찰적 글입니다. 유학 힘들어요 ㅠㅠ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자 여행을 떠나라!!)


가족 사진
아내와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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