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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선생 Jul 04. 2022

존재의 이유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모여 이야기하던 주제가 있었다.

대체 학교는 왜 있는 걸까?


어쩌다 보니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나와 생각의 흐름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 더 운이 좋게도,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 것일 수도 있겠다. 나와 내 친구들은 누군가가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이었고, 선생님들과 씨름하는 것이 귀찮아 옷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학교가 왜 존재하느냐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꽤나 심도 있는 대화 주제가 되기도 했다.


 첫째, 학교 선생님들의 강의력이 유명 인터넷 강사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들어야 할까? 둘째, 공부를 강제하기 위해 학교에 온다면, 스스로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해야 할까? 셋째, 집에서 부모님께 충분한 지원과 사랑을 주셔서 선생님의 보살핌이 딱히 필요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에게도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필요할까?


정리해 보자면, 이렇게 크게 세 가지의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학창 시절 내린 결론은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학교가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렇다면 교사가 된 지금은 어떨까.



 교직에 첫 발을 내딛던 1년 차의 나는 아이들의 외로움에 눈을 뜨게 되었다. 물론, 나의 어린 시절처럼 적당한 가정에서 적당한 사랑을 받으며 크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가정에서 만족할 만한 사랑을 받지 못해, 교사에게 그 사랑을 충족하려는 아이. 학교에 오는 것만이 비상식적인 부모로부터 해방의 창구가 되는 아이. 학교에서 나오는 점심 한 끼로 하루를 버티는 아이. 학교의 소풍을 통해 처음으로 나들이를 가 본 아이. 세상에는 여러 가정환경 속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쩌면 학교의 존재는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조금은 외로운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학교에서 점심을 주고, 교사가 관심을 주고, 소풍을 가는 이유가 어딘가에서 소외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존재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3년 차가 된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1년 차 때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 게임 하나를 만들 때를 생각해 보자. 게임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사람, 게임을 홍보하는 사람, 서버를 관리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개입된다. 책을 만들 때에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사람, 삽화를 그리는 사람, 표지를 디자인하는 사람, 책을 광고하는 사람,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 사이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일이 이렇다. 사회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과 개입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에서 학교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렇게 발전된 시대에도 굳이 한 명 한 명 얼굴을 맞대고, 하나의 교실에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개입과 협업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의 ‘다양함’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든,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다양함에서 배우고 또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을 가장 잘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닐까. 매년 담임교사가 교체되고, 매년 학급의 구성이 달라지는 이유는 그러한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3년 차의 나는 커다란 사회 속에서 개인을, 개인 속에서 다양함을, 그리고 그 다양함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 또한 아이들에게 다양한 어른의 모습 중 하나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키가 채 160cm도 되지 않는, 검은색 옷과 링 귀걸이를 좋아하는, 어딘가 뭔가 즉흥적인, 이 어른의 존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함의 모습 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다양함에 한 발 더 보태러 학교에 간다.


Epilogue.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 맨투맨에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하고 간 날이 있었다. 등굣길에 학생이 다쳐 하필 그날 학부모님과 첫 대면을 했는데, 나의 행색을 본 학부모님은

“다...담임 선생님...이신가요...?”

라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물어보셨다.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옷은 좀 단정하게 입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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