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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선생 Feb 10. 2023

한 줌 내어주기

그래서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데요?

 교육대학교 2학년 재학 시절, 실습을 나가던 날이었다. 내가 갔던 교실의 칠판에는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장난 섞인 말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반의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과 견고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 당시에는 '나도 이런 교실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매우 어려운 것임을 지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교실의 특별한 점을 되짚어보자면, 담임 선생님께서 강다니엘을 좋아하신다는 것.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서 책을 좋아하셔서 작가들의 강연에 많이 다니신다는 것. 이게 그 교실의 특별한 점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이 특별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교직에 들어서면서 내가 굳게 다짐한 것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교사가 되자.

이게 내가 굳게 다짐한 것이었다. 나도 학창 시절을 지나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선생님들도 인간이기에 나와 맞는 선생님이 있었는가 하면, 나와 맞지 않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때 그 어른은 나와 맞지 않았던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기억을 덮어본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에는 나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은 선생님들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던 선생님들께 죄송한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기억을 주지 않은 사람이라면, 초등학교 선생님은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나쁜 기억을 주지 않는, 그저 무난한 선생님이기를 바라며 이 교직에 들어섰다.


 그런 마음으로 교직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지 않더라도, 그저 잘 가르치고 잘 보살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억에 남지 않는 교사. 어쩌면 쉬워 보이지만 해보면 꽤나 어렵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늘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수업 못하는 교사로 기억되기 싫어서 늘 남아서 수업 준비를 하고, 실수 없이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의 첫 해는 물 흐르듯 내가 원하는 대로 지나가는 듯했다.


 첫 해 맡은 아이들과의 종업식 날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함께 하고 싶은 활동이 있냐 물었다. 나는 평소처럼 마피아 게임을 하자고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답변은 달랐다.

선생님, 저희 Q&A 해요.


뜬금없이 아이들이 Q&A를 하자는 것이다. question and answer 그거 말이다. 나는 물었다.

"대체 누구랑? 너희들끼리?"

"아니요. 선생님이랑 저희들이랑요. 저희가 질문하면 선생님이 답변하는 거예요."

"선생님이랑 1년 동안 봤는데 뭐가 더 궁금해?"

"저희는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요. 우리는 선생님을 더 알고 싶단 말이에요."

"그래, 좋아. 그러면 칠판에 다 나와서 선생님한테 궁금한 것 다 적어보렴."

아이들은 모두 우르르 나와서 칠판에 질문을 적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나이나 키가 궁금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질문은 가지각색이었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은? 선생님이 어렸을 적 좋아했던 책은? 선생님이 좋아하는 색은?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선생님이 좋아하는 과목은? 선생님이 힘들 때 듣는 음악은? 우리가 좋았을 때는? 우리가 미웠을 때는? 선생님의 전남친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선생님은 대학시절 아싸였나요? 인싸였나요? 선생님의 가족은 어떤 일을 하나요? 선생님도 마라탕을 드시나요?...


칠판에 빼곡하게 적힌 종업식날의 칠판을 보며 나는 무언가 큰 것을 놓치며 1년을 보냈구나 느끼게 되었다.




 내가 1년 동안 놓친 게 무엇이었을까. 종업식날을 마치 개학식날처럼 보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젊은 남자분이셨다. 영어 담당이셨고, 눈웃음이 참 예쁘셨던 기억이 난다. 다른 건 다 기억이 안 나고, 어느 주말 선생님께서 우리 반 학생들을 모두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교회에 초대하셨다. 선생님의 황금 같은 주말에 말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여자친구분을 보여주며, 곧 결혼할 사람이라며 예쁜 눈웃음을 지으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웃으며 손뼉을 치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차가워진 손을 난로에 녹였다. 그러면서 선생님 여자친구분 예쁘다며, 여자친구분이 아깝다며 뒤에서 낄낄거렸다. 그 기억이 다였다.

 실습 때 만났던 그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선생님께서 어떤 수업 기법을 활용하고, 어떤 수업 모형을 사용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선생님께서 강다니엘을 무척 좋아하셔서 아이들과 강다니엘 포토 카드를 같이 보며 웃음 지으셨던 것,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나 사진 찍었다며 아이들에게 자랑하던 것. 그 두 가지만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교사도 학생도 사람이기에, 1년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학교 끝나고 무엇을 하냐며, 아침은 먹고 왔냐며, 누구랑 친하냐며 수없이 질문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질문을 받고 나의 어떤 부분을 내어주었던가.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어떤 부분을 보여주었는가. 사람은 취향과 사건으로 기억된다고 믿는다. 이제는 교사이기 이전에 한 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pilogue.

다음 해 만난 아이들에게는 나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해 졸업한 아이가 찾아와 말했다.

"선생님, 사실은요. 공부는 기억에 안 남고 선생님이 해주셨던 대학시절 얘기밖에 기억이 안 나요."

"자랑이다.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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