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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선생 Jan 12. 2022

선망의 대상

교사가 되어도 선생님이 되기를 바란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학창 시절부터 그렇게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정말 됐구나, 축하해."


그리고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도 듣는다.

"네가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어 참 마음이 놓인다."


맞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부모님이 마음 놓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 직업을 갖길 원했고, 교육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능을 한 번 더 보는 수고도 있었다. 임용고시에 한 번에 높은 등수로 붙었고 바로 발령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 꿈을 포기하고 산다는 요즘 세상에, 나는 어쩌면 굉장한 행운아 일지 모른다. 그렇게 교직에 발을 들이고 나서는 또 어떤 꿈을 꾸는가.

요즘 나는 또다시 교사를 선망한다. 아니, 선생님을 선망한다.


동료 교사 공개 수업을 위해 회의를 하던 날이었다. 교사가 되고 나면, 학부모와 동료들에게 몇 번씩 수업을 공개해야 한다. 수업 공개는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성스러운 ppt와 수업 자료를 밤새 만들며,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교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햐 하는 것은 물론,  반 학생들과 함께한 멋진 미술 시간 작품들이 교실에 전시되어 있어야 한다. 듣기 좋은 깔끔한 발문과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교사와 학생 사이 그동안 얼마나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표정과 목소리,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교육적인 의미를 지니는지를 평가받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나처럼 이렇게까지 공개 수업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교사는 많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공개 수업을 이리도 마음속 짐처럼 생각하게 된 이유는 3학년 교생 시절부터다.


교생들이 가기 싫어하는 1순위 학교로 실습이 당첨된 나는 가기 전부터 두려움에 떨었다. 그 학교는 학예회나 운동회 때 교생들을 일꾼처럼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은 물론, 매 수업마다 깐깐한 평가를 내리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퇴근 시간을 넘겨서까지 수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서 정시 퇴근은 꿈꿀 수도 없고, 매번 그 날카로운 평가로 마음의 상처를 얻어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나 또한 이 실습 학교에서 정말 기억에 남았던 수업 평가가 있다. 어둡게 비가 내리는 날의 체육 수업이었다. 실내에서 수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들어간 실습 반 학생들에게 꼬리잡기 수업을 진행했다. 한창 뛰어다니고 싶은 시기에, 이리저리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수업을 어떤 학생이 싫어하랴. 너무 즐거웠다는 학생들의 소감을 마지막으로, 수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나 또한 무난한 수업을 했으니, 평가도 무난하겠거니 생각했다.

"이 수업은 실패한 수업입니다.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수준의 수업이었네요."

평가가 시작되자마자 들은 첫 평가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저 말에 충격받아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내에서 하는 활동이라 활동 중간중간 안전 지도를 했는데, 활동 시작 전에 안전 지도를 했어야 한다는 점, 내 표정이 밝지가 않았다는 점, 미리 제출해야 하는 수업 계획을 빨리 내지 않은 점 등이 이유로 기억난다. 아...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수업이었는데 '실패'로까지 명명될 수업이었구나. 이때부터 공개 수업에 대한 두려움의 씨앗을 심게 된 것 같다.


교사가 된 후에도 공개 수업의 두려움은 여전했다. 그래도 교사가 된 이상 남에게 나의 수업을 보여주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동료 교사에게 공개 수업을 하기 위해 교사들끼리의 회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교생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회의에 참석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이번 동료 교사 공개 수업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라고 하셨다. 그러자, 연차가 높으신 고경력 선생님께서 본인들은 수업을 동료에게만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므로, 학부모 공개수업만 하자고 말을 꺼내셨다. 하긴, 20년이 넘어가는 본인의 수업에 후배들이 하나하나 속으로 평가할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우실까 생각도 들었다. 나 또한 공개 수업에 매우 부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이야기에 속으로 적극 동의를 던지고 있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께서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 5년 미만의 저경력 선생님들만 수업을 공개하는 건 어떨까요?"

속으로 적극 동의를 던지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선배 교사들에게 나의 수업을 또 평가받겠구나. 이번엔 또 얼마나 열심히 수업을 준비해야 할까. 어떤 수업을 해야 덜 까일까. 그때, 나의 시끄러운 생각을 멈춘 한마디가 있었다.


"아니요, 5년 미만 말고 10년 이상 선생님들만 수업 공개를 하는 건 어떨까요."


눈이 번쩍 뜨였다. 저경력이 아니라 고경력 선생님들만 수업 공개를 한다는 것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저경력 선생님들은 다양한 수업을 보며 배울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할 것이고요. 그런데 우리는요? 우리는 이제 다른 수업을 보아도, 우리만의 고집이 생겨버려 쉽게 바뀌지 않지요. 그러니까 선배들이 수업을 보여줘야지요."


교사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다면, 나는 이 선생님의 말씀을 명대사로 쓰고 싶었다. 맞다. 사실 한 번 교직에 발을 들이면 수업을 배울 기회가 매우 적다. 발령을 받으면 바로 그날부터 한 반의 담임으로 모든 과목을 도맡아 진행해야 한다. 수업을 볼 기회도, 배울 기회도 너무 적다. 저경력 교사들의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계신 분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늘 회피하고만 싶었던 공개 수업을 이렇게 선뜻 나서서 하시겠다는 선생님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기꺼이 내보이겠다는 선생님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나는 선생님을 선망하게 되었다. 언젠가 내가 직장의 주축이 되는 나이가 된다면, 그에 걸맞은 노련함과 공감 능력을 지닐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실력과 능력으로 어느 한 사람 보듬어줄 수 있는 한 마디 건넬 수 있을까. 저경력이 그리는 자신의 미래는 아득하게도 머나먼 이야기 같다.

오늘도 나는 선생님이 되기를 바란다.



Epilogue.

이 회의 이후, 결국 동료 공개 수업은 이를 희망하는 교사들만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많은 선배 교사분들이 수업 공개를 신청했고, 나와 같은 저경력 교사들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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