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발령받은 학교의 우리 반 학생들은 내가 그동안 '가족'이라 생각했던 개념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다. 교사가 되고 나서, 내가 25년을 살면서 가장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가족이었음을 나는 뼈저리게 느끼는 날들이 많았다. 나의 짧은 인생 동안 겪어온 가족이란 아주 튼튼한 뿌리와도 같았다. 25살이 되어도 나를 아기 취급해주는 부모님과,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오빠가 있었다. 가족마다 다양한 가정사가 있겠지만, 우리 가족도 저마다의 잘못을 덮어주며, 저마다의 힘듦을 토닥거리며 함께 쏟아지는 시간을 맞는 공동체임은 확실했다.
나의 가족에 대해 떠올리면, 예쁜 기억들도 참 많다. 토요일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부모님은 나의 학교 앞에 차를 몰고 나를 태우러 오셨다. 학교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교문을 나서면, 차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부모님이 보였다. 그러면 옆집에 사는 친구와 함께 부모님 차를 타고 선선한 바람을 쐬며 집으로 갔던 기억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 오빠는 어린 내 손을 잡고 과자를 사주러 동네 구멍가게를 자주 들락거렸다. 투닥거리는 날도 많았지만, 외동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오빠였다. 나에게 가족이란 든든한 엄마와 아빠란 사람이 존재하고, 오빠라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있는 것이었다.
처음 발령을 받고 나서는 내가 가지던 가족의 개념이 터무니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또 느꼈다. 우리 반에는 다양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았다. 부모님이 아이를 함께 양육할 수 없는 상태인 가정, 조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가정, 친척 집에서 아이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가정도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너무 필요 이상으로 써야 했다.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만 14세 이하로, 스스로는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상담 하나를 받을 때에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사진을 찍는 것,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는 것, 체험 학습을 가는 것, 안내장의 회신을 받는 것 모두 보호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앞에서 나는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망설여졌다. 나의 말 한마디에 어떤 아이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늘 입에서 주저하고, 맴도는 단어였다. 그동안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썼던 나의 25년 생애는 참으로 큰 고난을 얻은 것이다. 부모님을 대체할 단어는 없을까. 몇 달을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보호자라는 단어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너무나 어려운 단어였다. 가정에서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을 부를 단어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학생 복지를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 우리 반을 방문하셨다. 학생들에게 교육 복지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아, 물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다양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업무를 주로 맡으신 분이기에, 무언가 다른 단어를 쓰시지 않을까 싶었다. 프로그램 홍보가 다 끝나고 신청서를 나눠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 계신 어른께 보여드리고 사인받아오세요."
순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집에도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은 있었다. 그분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부를 수 있는 말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나는 그날부터 부모님이라는 단어 대신에 '집에 계신 어른'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20년을 넘게 쓰던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교정하는 데에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습관적으로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잦은 노력을 통해서 집에 계신 어른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은 것 같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깟 단어 하나 바꿔 쓴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그래도 믿고 싶다. 나의 이 작은 말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아이들이 의식하지 않고, 그저 흘려보낼 수 있는 단어가 될 것이라고. 하나의 단어를 고쳐 씀에도 매일의 수고가 필요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에 걸림돌을 만들지 않는다면, 작은 노력들을 모아보기로 다짐한다.
Epilogue.
어느날 눈치 빠른 녀석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왜 부모님이라고 안하시고 집에 계신 어른이라고 하세요?"
나는 뻔뻔하게 답했다.
"부모님도 집에 계신 어른이잖아."
'아~맞네'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