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재회

예상하지 못한 진실

by 김태은

동기 언니와 만나기로 한 날, 나는 꽤 많이 긴장해 있었다. 긴장한 티가 나지 않도록 마음을 몇 번이고 다잡아야 했다. 심장 가벼운 진동처럼 계속 너울거렸다.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웃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화난 얼굴도 아니었다. 그저 예전부터 내려앉아 있던 무심한 표정 그대로 작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안녕하세요.”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내 얼굴은 아마 평소처럼 조금 굳어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대화는 십 년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래처럼 천천히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대화를 잘 이어나가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 우물거리며 단어를 고르고 있었을 것이고, 그녀는 그런 나에게 잘 지냈냐는 평범한 안부를 건넸을 것이다.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잘 지냈다고, 언니도 잘 지냈냐고— 그런 틀에 박힌 대답을 했겠지.


방향 없는 말들이 몇 번 오가다가 어느 순간, 나는 다짜고짜 말을 꺼냈을 것이다. 대화의 적절한 타이밍 같은 걸 전혀 알지 못할 때였다.

예전 그 일들이… 기억나냐고,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내 질문은 애매했고, 조금 흔들렸고, 어딘가 물기 어린 음성이었을 텐데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차분히 답했다.


“응. 기억나.”


지금 돌아보면 내 기억과 그녀의 기억이 같은 모양이었을까 궁금하지만, 이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찌 되었든, 내가 꼭 꺼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 순간 시작되었다.


나는 말했다.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다고. 왜 따돌림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지 않았냐고.


“응, 알고 있었어. 그 땐… 내가 좀 어렸던 거 같아. 미안해.”


깔끔한 사과였다. 너무 쉽게 나와버리는 ‘미안해’였다.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준비해 두었던 수많은 말들이 입 안에서 조용히 녹아 사라졌다.


사과를 들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거나 몰랐다고 말하면, 어떻게든 화를 낼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물론 정말로 화를 낼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그녀가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휴학하고 사라진 뒤 몇 달쯤 지나자, 다른 동기들이 이번에는 자신을 따돌리기 시작했다고.


“2학년 때부터 내내 혼자였어.”


그녀는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마치 오래된 사실을 천천히 꺼내놓는 사람처럼.

나는 믿기지 않았다.
그녀 같은 사람이? 그 무리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중심 같았던 그녀가?


이유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잠시 숨을 고르고, 조금 낮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아마… 너를 따돌렸던 그때와 같은 이유였겠지.”


그 말은 공기 속 어딘가를 미묘하게 흔들었다. 커피잔이 살짝 테이블에 내려앉는 소리가 작은 울림처럼 들렸다. 잠시 고요가 들었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혼자가 되고 나서, 네 생각이 종종 났었다고.
힘들었겠구나 싶었다고.
늦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그 말들은 감정에 치여 흔들리는 톤이 아니었다. 오래 준비되어 있던 문장이 제자리를 찾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오후였다. 카페 밖 공기에는 초겨울의 냄새가 약하게 섞여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남긴 여운 속에서 한동안 멍해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고 조용한 파문이 오래도록 잔잔하게 번져갔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 파문이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6화처음으로 도망치지 않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