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도망치지 않은 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지만

by 김태은

“학교 좀 제대로 다녀!”


그녀가 떠난 후에도, 그녀의 밝고 가벼운 목소리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그녀가 나를 공격하려고 던진 문장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내 안쪽으로 묵직하게 스며어, 오래 전 묻어둔 흉터의 한가운데에 정확한 각도로 박혀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가게 한쪽에서 말끝에 붙잡힌 채 한동안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느린 파도 같은 소리가 났다. 타인의 무신경한 한 마디에 이렇게까지 타격을 입는 내가 싫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예전처럼 곧장 도망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않았다.

아니, ‘도망치지 않은 것’인지 그저 ‘도망칠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둘은 어딘가에서 겹치고 섞여 경계가 흐릿해져 있었다.


아주 조금은 예전보다 마음이 뭉쳐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이라는 작은 책임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돌아올 ‘왜 그만두는지’ 같은 질문들을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회피하는 것보다 회피 뒤에 이어지는 대화가 더 두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혹시나 그 친구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자연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남몰래 연습하기도 했다.


그런 연습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웠고, 쓱했지만. 그래도, 몇 번이고 마음속에서 작은 시나리오를 돌렸다.


그녀는 그 뒤로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는 결국 1년 넘게 계속되었다. 내가 선택한 무언가를 그렇게 오래 붙잡아 본 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꾸준함이라는 것이 이렇게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꾸준함은 커다란 결심이나 극적인 변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인지도 몰랐다.


그 사이 나는 빵집에서 제법 익숙한 알바생이 되어 있었다. 매니저 언니와는 사소한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언니는 자신의 오빠 이야기를 꺼내며 소개해주고 싶다고 웃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심 기뻤다.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은근히 따뜻하게 했다. 나이 차가 꽤 있어서 그 제안은 조심스레 거절했지만.


그렇게 어느새 나는 스물셋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서는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요히 피어올랐다.
학교에 다시 가는 것. 이번에는 제대로 졸업하는 것.

두 번이나 학교를 포기하고 나니 이걸 해내지 못한다면 평생 그 자리에 묶여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마자 나는 어느 쪽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용기와 객기 사이의 어딘가.


나는 예전 대학 동기들 무리를 이끌었던, 한 살 위의 예쁘고 무심했던 동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H라고. 기억하시냐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혹시 만날 수 있겠냐고.

당시의 나로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과감한 행동이었다.


몇 시간 뒤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알겠다는 짧은 문장. 학교 근처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좋다고 답장을 보냈다. 문자를 보내는 짧은 순간에도 손끝이 약간 떨렸던 기억이 있다.


그 떨림이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아주 작은 기대 때문인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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