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라앉히던 목소리와의 작별
동기 언니와의 만남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남겼다. 내가 대학에서 사라진 뒤, 그녀가 다음 타겟이 되어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 그건 내가 준비한 적도, 예상한 적도 없는 방향에서 날아온 말이었다. 마치 조용한 방 안에서 갑자기 창문이 덜컥 열리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무수히 책만 읽던 시절, 나는 비슷한 문장들을 여러 번 마주쳤다.
왕따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따돌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그 말들은 늘 온화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내 깊은 곳에는 또 다른 목소리가 축축한 흙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목소리는 꽤나 빈번하게, 물 아래에서 둔탁한 파동을 일으키듯 나를 흔들어댔다.
—그런 건 다 허울 좋은 말뿐이지.
네가 어딘가 결함이 있으니까 그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고등학교는 버티지 못해 결국 도망쳤고,
대학에서는 그 결함이 완전히 드러나버린 거잖아.
너도 알고 있지 않아?
사람들과 계속 어긋나는 건, 결국 네 쪽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나는 안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면 끝없이 가라앉기만 한다는 걸. 생각을 바깥으로 끌어내 햇빛에 말려야 한다는 걸.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인생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는 걸.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우울과 좌절의 늪을 벗어나기엔 너무 지쳐 있었고, 너무 오래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녀의 말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내가 보기엔 그녀는 평범했다. 아니, 오히려 예쁘고 멋졌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결함’이라는 단어와는 먼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도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내가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가설, 따돌림을 당한 건 오롯이 나 때문이었다는 믿음을 날카롭게 흔들어놓았다.
아마 그 무리에게는 언제나 ‘누군가’를 정해놓고 밀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는 나였고, 두 번째는 그녀였다. 그녀도 사라졌더라면, 또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웠을지도 모른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 시절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곳에서 무난하게 지냈고, 웃기도 했고, 작은 실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정말 결함이 있었다면, 그곳에서도 결국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 내가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걸어두었던 주박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 안쪽에서 느리게 매듭이 느슨해지는 소리.
—결함 있는 인간이라는 낙인.
드디어, 6년 만에
나를 붙잡던 깊이를 알 수 없는 악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