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르는 방법

물 아래에서 시작된 서늘한 회복

by 김태은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고, 나는 스물셋이 되었다. 그 무렵부터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조용히 따라붙었다. 그것은 뚜렷한 계획이라기보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 조용히 스며드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평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외의 시간은 거의 모두 도서관 열람실에서 보냈다.


물론 ‘공부’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나는 마음처럼 집중되지 않는 시간 속에 길게 앉아 있었다. 글자를 읽고 있는 건지,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졸고 있는 건지. 내 스스로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결국 공부는 이름뿐이었고, 내 발걸음은 자꾸 자료실로 내려가 서가 사이에 멈춰 섰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문장은 묘하게 미끄러지고, 여운이 깊게 남아 나의 안쪽에서 반짝였다. 그 날 처음 만난 한 권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아마도 『낙하하는 저녁』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에는 도서관에 남아 있던 그녀의 모든 책을 잔뜩 품에 안고 돌아왔다. 공부는 잠시 내려두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들에 파묻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몇 권의 책들을 지나고, 흐린 하늘빛 표지의 『홀리 가든』을 읽었다. 그리고 그 속의 작고 짧은 ‘수영’ 장면에 이상하리만큼 크게 흔들렸다. 수영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 장면을 읽는 동안 나는 물 속에서 가볍게 떠오르는 감각을 은근하게 상상했다. 그 상상은 오래 참지 못하고 어떤 충동처럼 몸을 밀어 올렸다.


나는 갑자기 수영장을 검색했고, 그날 바로 초급반 강습에 등록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이었다.
수영복과 물안경을 사러 나가고, 수영장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찾아보았다. 그렇게 준비는 어딘지 모르게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움직임처럼.



수영장은 꽤 넓었고, 오전 10시 강습임에도 수강생이 열다섯 명이나 있었다. 여자 강사는 키가 크고, 목소리도 크고, 시원시원했다.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조차 서툴러 단번에 반의 꼴찌가 되었지만, 상관 없었다. 속에 있는 느낌은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웠다.


나는 매일 아침 걸어서 수영장에 갔다.
버스를 타면 10분이지만 35분을 걸었다. 걷는 동안 바람이 몸 옆을 스쳐 지나가고, 가끔은 질척대던 생각들이 보도블럭 사이로 빠져나갔다.


9시 35분 도착, 씻고 준비하고 9시 50분에 물 속으로. 강습은 10시 50분까지였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으면 11시 20분쯤 밖으로 나왔다. 집에 돌아오면 12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는 아르바이트에 갔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느새 완전히 내려놓은 공부 대신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에 수영이 얹혀지면서 내 삶에는 묘하게 규칙적인 리듬이 생겨났다.






봄의 초록이 짙어질수록, 내 일상에 자리 잡은 리듬은 더 선명해졌다.

물 속에서 몸을 흔들고, 햇빛 아래를 천천히 지나 돌아오고, 아르바이트를 가고, 책을 읽다가 잠드는 생활. 그 반복은 단순했지만, 나의 무언가가 평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알았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마음의 깊은 층을 천천히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운동은 우울증에 좋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말은 늘 책이나 기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우울 속에 있던 나에게는 언제나 다른 나라의 날씨처럼— 그날의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로만 들렸다.


살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몸 곳곳에 눌어붙어 있을 때, “운동하면 좋아진다”는 말은 농담처럼 가볍거나, 때로는 이유 없이 기분 나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누가 권해서가 아니었고, 누가 기대해서도 아니었다. 책 한 권 속 짧은 단락이 나를 흔들었고, 그 흔들림을 붙잡아 움직인 건 나였다. 그 작은 차이가 큰 파장을 만들고 있었다.


왕복 한 시간의 걷기, 한 시간의 수영. 하루 두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자 몸이 먼저 변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식욕이, 깊은 물 속에서 막 떠오른 기포처럼 꿈틀대며 올라왔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게 되자 흐느적거리던 몸도 형태를 찾아갔다.


첫 달의 초급반에서는 늘 꼴찌였지만, 두 번째 달에는 두 번째 자리까지 올라갔고, 세 번째 달에는 중급반이 되었다.
열심히 하면 실력이 는다— 그 지극히 단순한 사실도 그때의 나에겐 조금 감동적이었다.


첫 번째 자리를 늘 지키던 언니와도 자연스레 친해졌다. 강습을 마치고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으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몇 마디씩 나누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였지만, 그런 ‘별 것 아님’이 나에게 위로처럼 스며들었다. 처음 본 사람과도 평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언니가 다시 일을 시작하며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밥 한번 먹자고 먼저 말해줘서 조금 놀랐고, 조금 기뻤다.
우리는 깨끗하고 단정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관계가 좋은 순간에 끝난다는 것, 그것 또한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라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수영장까지 걷는 길은 고역이 되었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피부를 감싸는 물의 밀도, 숨을 들이쉴 때 가슴에 차오르는 시원한 공기, 물 위에서 흔들리며 반짝이는 빛— 그 모든 것은 잠시, 그러나 분명히 나를 바깥으로 데려갔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걸었고, 계속 헤엄쳤다. 그건 노력이라기보다 어떤 조용한 본능 같았다. 살아 있는 쪽으로 아주 천천히 기우는 본능.


수능까지는 네 달 정도 남아 있었다. 수영과 공부로 이어진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야 할 때였다. 매니저 언니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빵집 아르바이트를 정리했다.


나는 수영으로 만들어낸 이 조용한 리듬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8화결함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