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에게로

인턴과 조기 졸업

by 김태은

3학년을 보내며, 나는 조기졸업을 목표하게 되었다. 학점도 충분했고, 성적도 좋았다. 졸업 요건만 일찌감치 채우면 가능해 보였다. 숫자와 조건만 놓고 보면, 꽤나 현실적인 계획이었다. 서류 위에서는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 점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 시기, 나는 스물넷이라는 나이— 다른 여자아이들이 졸업할 나이에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새로운 마음의 짐처럼 어깨에 얹혀 있었다. 나는 3학년이었지만, 이미 스물여섯이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가끔, 나만 시간이 다소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작이 너무 늦은 것 같다는 불안, 취업을 할 때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졸업해 스물일곱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건 조급함이라기보다, 시간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졸업을 위해 필요한 건 토익점수, 자격증, 그리고 인턴 경험이었다. 나는 3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조기졸업을 준비하며 토익과 정보처리기사 공부를 시작했고, 운 좋게도 4학년이 되기 전 넉넉한 토익 점수와 자격증을 얻었다. 이제 남은 건 ‘인턴’뿐이었다.


우리 대학에서 연결해주는 곳은 학교 도서관과 인근 공공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인턴을 할지 고민이 되었다. 선택지는 단순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타지에서 홀로 3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또 달라져 있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어느새 집이 그리워졌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집, 늘 다니던 동네 도서관, 익숙한 하늘과 냄새와 거리들.


낯섦으로 나를 지탱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익숙함이 다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방학에도 학교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집에 내려가지 못했던 시간들과, 작은 자취방에서 보낸 몇 년은 소리 없이 나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집 인근의 공공도서관들에 직접 전화를 돌리기로 했다. 내가 사서를 꿈꾸게 된 계기이자 매일 드나들던 우리 동네의 큰 도서관은 이미 연계 대학이 있어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수화기 너머의 짧은 침묵이 오래 남았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잠시 확인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몇 분 뒤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한마디에, 내 마음 속에 들어차 있던 숨이 살짝 느슨해졌다.


그렇게 3학년 겨울방학, 나는 인턴을 시작했다. 작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도서관이었다. 인턴을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직원들 모두가 유난히 다정했다. 나를 맡아준 분은 특히 섬세하고 친절했다. 많이 배워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질 만큼, 매주 다른 업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주었다. 디지털자료실, 어린이자료실, 종합자료실, 그리고 사무실까지. 그렇게 한 달 동안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속살을 천천히 훑어갔다.


일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직원들과 똑같이 9시부터 6시까지 출근하며,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 하려고 했다. 오히려 시킨 일을 너무 빨리 마쳐버려 난처해하는 얼굴을 몇 번 보게 되기도 했다. 도서관의 하루가 어떤 리듬으로 흘러가는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이 움직이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을 거치며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내 마음은, 흔들리기보다는 오히려 단단해졌다.


인턴을 마치고 한 달쯤 지난 후, 그 도서관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주말 자료실에서 근무할 사람을 찾고 있다며 혹시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문의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단번에 승낙했다. 하루 7시간 근무에 최저시급,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출근하는 자리였다. 조건은 평범했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특별했다.


그 일을 위해 나는 평일엔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금요일 밤마다 기차로 집에 내려가 일요일 밤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생활을 해야 했다. 소요시간과 왕복 기차비를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좀 더 일하고 싶었다. 책과 사람과 시간 사이를 오가는 그 공간 안에, 약간이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도서관은 아르바이트 공고를 따로 내지 않고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만 연락을 주는 구조였다. 내가 그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모두 네 명이었다. 전부 여자였고, 전부 이십 대였다. 나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보다 어린 둘, 나보다 많은 둘—의외로 고르게 섞여 있었다. 이미 직장인이면서 부수입을 위해 나오는 사람도 있었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학교에 다니며 용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바일 게임에 원하는 만큼 돈을 쓰고 싶어서 일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도서관과 어울리는 차분하고 사근사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들과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말이 막히지 않았고, 가슴이 위축되지도 않았고, 그녀들이 괴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대화는 특별할 것 없이 흘렀고,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낯설 만큼 편안했다. 그랬다. 또래 여자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느 순간 두렵지 않게 되어 있었다.


물론 일을 하지 않을 때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정도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다른 사람들 속에서 모난 돌처럼 튀어나오지 않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평범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열일곱부터 스물여섯까지 간절히 바라온 것. 그 목표가 아주 조용하게, 내 안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어느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아 창밖만 오래 바라보았다. 많이 나아졌구나, 정말 모르는 새에 나아졌구나. 그 나아짐이 고마웠다.


4학년 1학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위해 매주 두 번 기차를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가며. 그리고 1학기가 끝나던 그 여름, 나는 드문 조기졸업자 명단 속에서 조용히 졸업식을 치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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