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동안의 수업
조기졸업을 하고 자취방을 정리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떠들썩한 축하도, 뚜렷한 이별도 없었다. 가깝게 어울렸던 1학년과 2학년 시절의 남자 동기들을 제외하면, 나는 졸업까지도 일상을 함께 나눌만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내가 누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왔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고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짐을 정리하고 방을 비우며 마지막으로 문을 닫을 때도, 마음속에서는 어떤 장면도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수업 시간에 적당히 웃으며 어울릴 수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맺은 관계들도 있었기에 대학생활을 ‘실패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게다가 졸업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기에, 쓸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감정을 곱씹을 틈도 없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다는 감각이, 설명 없이 나를 앞으로 밀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사서 자리는 정말 없다는 것을.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상관없이, 무엇이든 사서로 일하고 싶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서 사서 일자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은 채용 공고를 확인하는 일로 이어졌고, 스크롤을 내릴수록 화면은 고해졌다.
범위를 넓히면 응시할 수 있는 곳들은 분명 더 많아졌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3년 반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내 고향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도로와 꺼진 신호등과 하늘, 같은 시간에 불이 켜지는 가로등, 낡은 상가 건물과 수십년 간 자리를 지키는 과일가게와 같은 일상의 경치를, 앞으로도 쭉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당장은 매일 채용 공고를 확인하며 사서공무원 시험 공부를 병행하기로 했다. 다시 도서관을 드나들며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흘렀다. 그 사이 공무원 시험 일정이 한 번 있어, 나는 맛보기처럼 공부한 채 시험을 치르고, 당연하게도 떨어졌다. 실망할 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기에, 타격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고 하나가 올라왔다. 집에서 조금 멀긴 했지만 같은 지역 안에 있는 곳이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였다.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기보다는, 더 미룰 수는 없다는 감각으로 이력서를 정리해 메일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지만, 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생애 첫 정장을 샀다. 검은 재킷에 흰 블라우스, 검은 치마, 검은 구두. 누가 봐도 면접을 보러 가는 사람의 차림이었다. 처음 입어보는 정장은 하나같이 낯설고 불편했다. 몸이 옷에 맞춰지는 게 아니라, 옷이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면접 날, 미리 알아둔 버스 노선을 따라 한 시간쯤 일찍 도착했다. 버스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괜히 질문을 던졌다. 정말 여기서 일하게 될까, 아니면 이 장면도 그냥 지나가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게 될까.
지방의 사립대학교였지만 도서관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시간을 보내며 도서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분야별로 나뉜 자료실이 넷이었고, 대출실, 정기간행물실, 멀티미디어실, 넓은 열람실과 컴퓨터실까지 있었다. 각 실마다 직원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어 관리가 잘 되어 보였고, 책의 배열도 거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책들이 제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도서관을 알고 난 후에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어딘가에 취업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은 아니었다.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가 노크를 하고 들어섰다. 별도의 면접장은 없었고, 과장실에서 과장님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이력서를 훑어보며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정보처리기사가 있네, 열심히 했나 보네, 했던 말도 기억난다. 질문은 예상보다 담담했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면접을 십 분 안쪽으로 끝났다.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이러면 붙는 건가, 하는 첫 면접 특유의 애매한 감각을 안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의 풍경은 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도 어딘가 달라 보였다.
며칠 뒤,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는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크게 기뻤다. 전화기를 내려놓고도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고, 우리는 짧지만 확실하게 기뻐했다. 그렇게 나는 첫 사회생활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준비라는 게 사실 별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어딘가가 정렬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처음 맡은 곳은 대출실이었다. 들어와서 보니, 기존 대출실의 정규직 직원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되어 채용된 자리였다. 대출·반납 처리, 연체·미납 도서 관리, 장서 대출 통계, 이용자 관리가 주된 업무였다. 일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일을 가르쳐주던 정규직 직원분은 꽤 무서운 사람이었다. 나와 나이 차이도 서너 살밖에 나지 않았는데, 묘하게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
휴가에 들어가기 전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그녀는 내 옆에 거의 붙다시피 하며 모든 일을 시켰고,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과장님께 메일을 보내보세요. 지금 알려준 대로 시스템 설정을 해보세요. 전화 왔네요, 받아보세요. 일을 시키는 그녀의 목소리는 단정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듬거리거나 실수를 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배웠지만, 몸은 늘 긴장으로 굳어 있었고 손끝이 자주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기도 했다. 어느 날엔 갑자기 내게 생일이 언제냐고 물었다. 바로 다음 주였다. 내가 답하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너무 가깝네”라고 말했다. 그 찌푸린 얼굴에 괜히 움츠러들어, 왜 물어본 걸까 혼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생일 당일, 커다란 케이크가 나타났다. 깜짝 놀란 나에게 그녀는,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좀 그렇긴 한데, 우리는 직원 생일은 챙겨요.” 라고 했다. 설명은 간결했고 말투는 차가웠지만, 케이크는 달았다.
그 이튿날에는 나에게 카드를 건네며 대출실 근로학생들을 데리고 회식을 하고 오라고 했다. 이유는 근로학생들이랑 잘 지내야 한다며. 아이들은 환호했고, 나는 그 환호를 거절할 명분도, 용기도 없어 어영부영 그들과 고기와 술을 함께했다. 생각보다 자리는 부드러웠고, 아이들은 친절했다. 계산을 마치고 이튿날 카드를 돌려주며 감사하다고 말하자,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더 먹어도 됐는데요”라고 했다. 카드에 찍힌 금액은 십만 원 정도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공무원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열흘이, 얼마나 드문 시간이었는지를.
그녀가 옆에 붙어 서서 하나하나 시키고, 지켜보고, 바로잡아주던 시간은 지나치게 성실했고 다정하기까지 했다. 내 사회생활의 기본기는 아마 그 짧은 열흘 동안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고작 서른 초반의 나이에, 자신은 빠진 자리에서 근로학생들과 회식을 하라며 카드를 건넸다는 사실이 얼마나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지도 이제는 안다. 나는 그런 기회를 얻은 적은 없지만, 설령 기회가 있었다 해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다만, 처음 만난 선배가 그녀였다는 사실이 고맙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일하는 어른’이었다.
열흘이 지나 그녀가 떠난 뒤, 대학도서관 직원으로서의 나의 첫 일 년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마치 소리 없이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