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우울, 남아 있는 동경
대학도서관의 근무는 생각보다 빠르게 몸에 익었다. 우선 업무량이 적절했다. 정해진 근무시간 안에 할 일을 모두 끝낼 수 있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겨도 서두르지 않고 잠시 생각해볼 여유가 있었다. 대출 데스크에서 직접 대출과 반납을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컸다. 하루의 속도는 늘 일정했고, 마음이 쫓기지 않았다.
대출 데스크에는 늘 두 명의 근로학생이 함께 앉아 있었다. 전임자가 직접 뽑았다는 그 아이들은 이미 반년에서 일 년 가까이 일한 상태였고, 손이 빨랐고 말수가 적당했으며 무엇보다 다정했다. 나는 그 아이들을 거의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흐름에 맞춰 움직여야 할 때도 많았다. 그 점이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스물일곱, 아이들은 스물셋에서 스물다섯 사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후배와 같은 나이였다. 그들이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장면은 처음엔 조금 생경했지만, 곧 익숙해지기로 했다. 어색함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그게 더 어른답지 않다고 느꼈다. 나는 내가 배웠던 방식대로 행동하려 애썼다. 열흘 동안 나를 압도했던 그 전임자처럼, 말수를 줄이고 판단을 서두르지 않으며, 필요할 때만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무실에는 다섯 명, 자료실에는 여섯 명의 직원이 있었다. 사무실 직원들은 늘 함께 일하다 보니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 보였고, 자료실 직원들은 각자의 공간에 흩어져 있어 인사는 나누되 깊이 엮이지는 않았다.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관계. 그 정도의 거리감이 나에게는 딱 좋았다. 가까워지기 위해 애쓸 필요도, 일부러 거리를 둘 이유도 없는 상태. 그 안정감이 마음에 들었다.
한 달쯤 지나자 대출실의 일은 느린 기계처럼 반복되었다. 대학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조용했고, 이용자 대부분이 학생과 교직원이어서 골치 아픈 민원도 거의 없었다. 하루하루가 평온하게 흘러갔다. 퇴근 후에도 몸이 과하게 지치지 않았고, 머릿속에 일의 잔상이 오래 남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이제 다시 수영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하며 잠시 멈춰 두었던 수영이었다.
도서관 근처에는 걸어서 이십 분쯤 가면 닿는 수영장이 있었다. 나는 수영도 하고, 공무원 시험 공부도 하고, 일도 해보겠다는 다소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아침 일곱 시도 아닌, 정확히 여섯 시 강습에 등록했다. 그러려면 집에서는 늦어도 다섯 시에는 나와야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런 계획은 생각만 하다 말았을 것이다. 새벽 다섯 시라니, 말도 안 된다고 여겼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한 번쯤은 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안 되면 그만두면 된다는, 아주 가벼운 결심을 할 수 있었다.
12월이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 비몽사몽한 상태로 수영장에 들어가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의외로 괜찮았다. 오히려 좋았다.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나면,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도시 위로 어스름한 빛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수영을 마친 뒤 머리를 말리고, 찬 공기를 맞으며 도서관까지 걸어갔다. 도착하면 대략 일곱 시 반. 나는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구석에 수영복을 널어두고, 여덟 시 반까지 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다.
그렇게 새로운 루틴이 만들어졌다. 새벽 수영, 출근 전 공부, 근무, 퇴근 후 열람실에서 다시 공부. 마치 대학생들 사이에 다시 섞여 들어간 것처럼, 나는 열람실의 한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의외의 장면과 마주치게 되었다. 다른 자료실의 계약직 직원과, 사무실의 계약직 직원을 열람실에서 본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두 나와 같은 이유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계약직으로 일하며 사서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미 시험을 두 번 치렀다고 했다. 이 년 넘게 공부만 했는데도 떨어져서, 이제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겁이 났다. 공부만 해도 떨어질 수 있는 시험이라면, 더 성실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퇴근 후 열람실에서 종종 얼굴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어느새 나는 그들의 술자리에 초대받았다. 둘 다 완전히 타지에서 이곳으로 와 자취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근로학생들과도 친구처럼 지냈고, 그 학생들까지 함께하는 술자리가 종종 벌어졌다. 시끄럽고 활기찬 자리는 낯설었지만, 동시에 기뻤고 즐거웠다.
하지만 술자리는 늘 늦게까지 이어졌고, 그런 날에는 새벽 수영을 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길어지는 자리는 거절하게 되었다. 내가 빠져도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그들은 자주 피곤한 얼굴로 출근했다. 그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문득 저렇게 지내서 시험에 계속 떨어진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들의 방식일 것이다.
이 즈음부터 우울은 거의 모습을 감췄다.
정확히 말하면, 우울이 머물 자리가 사라졌다. 하루는 새벽 수영으로 시작했고, 공부와 일로 채워졌으며, 밤이 오기 전에 이미 몸은 잠을 원했다. 예전처럼 이유 없이 가라앉는 밤은 찾아오지 않았다. 삶은 일정했고, 나는 그 리듬 안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숨 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감정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우울이 물러난 자리에는, 다른 감정 하나가 남아 있었다. 동경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또래 직원들, 그리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근로학생들을 볼 때면 나는 종종 멈춰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일이 끝나면 다 같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주말에도 약속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관계는 가볍고 빠르며 단단해 보였다. 마치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선처럼.
나는 그 장면을 부러워했다. 아니, 부러워한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했다. 나도 저렇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자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관계가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일이 끝난 뒤의 저녁, 피로가 남아 있는 밤, 그리고 다음 날의 컨디션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부은 뒤에도— 결국은 그들만큼 가까워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그게 가장 두려웠다.
나는 예전부터 관계에 있어 늘 비슷한 불안을 안고 있었다. 열심히 다가가도, 마음을 써도, 끝내는 같은 자리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늘 먼저 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한 발쯤 물러나 있곤 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거리두기였고, 동시에 실패를 미리 감내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동경은 하되, 나의 리듬은 지키기로. 새벽 수영과 공부, 그리고 조용한 하루. 사람들과 무난하게 지내되, 더 깊숙이 들어가려 애쓰지는 않는 삶. 관계가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만 가까워지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떨어져 있는 상태.
그 선택은 용기였을까, 회피였을까. 지금도 나는 그 경계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동경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