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자 교육

공무원 합격 이후, 내가 선택한 거리

by 김태은

계약직 사서로 일하며 나는 스물여덟이 되었다.


평온해지자 시간은 놀랄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감정의 진폭이 클 때는 하루가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특히 잠들지 못하는 밤은 끝이 없는 터널 같았다.


하지만 상태가 나아지자 밤의 일곱 시간은 온전히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잠은 더 이상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었고, 그저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깨어 있는 시간은 해야 할 일들로 채워졌다. 아침에는 수영을, 낮에는 일을, 저녁에는 공부를 했다. 하루는 일정했고, 그 일정은 나를 압박하기보다는 붙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그 리듬 안에서 안정적으로 숨 쉬고 있었다.


그렇게 반 년이 흘렀고, 어느새 공무원 시험일이 다가왔다. 어언 일 년 가까이 공부한 뒤 치르는 시험이었지만, 부담은 크지 않았다. 지금의 일이 만족스러웠고, 지금의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계약직’이라는 말이 특별히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도 않았다.


같이 일하던 직원 중에는 대학도서관을 일 년 단위로 옮기며 수년째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고, 그 얼굴에는 불만보다는 익숙함이 깔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꼭 정규직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 시점의 나에게는, 지금의 삶이 충분히 괜찮아 보였다. 너무 욕심내지 않아도 되는 삶, 무너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삶이었다.


어쩌면 그런 마음가짐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시험 당일에도 나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고, 문제 앞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합격 커트라인을 훌쩍 넘었고, 그대로 합격해버렸다.


갑작스러운 결과였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삶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막 도착한 공무원 합격을 외면할 만큼 확신에 차 있지는 않았다. 나는 근무하던 도서관에 합격 사실을 알렸고,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지만, 이미 선택은 끝나 있었다.






공무원 발령에 앞서, 신규자 교육이라는 시간이 먼저 주어졌다. 나는 그 시간을 하나의 실험처럼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환경. 이전의 나를 설명할 필요도 변명할 필요도 없는 자리.

나는 이곳에서, 내가 늘 싫어했던 나의 모습을 한 번쯤 시험해보고 싶었다. 우울하고 내성적이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전에 이미 겁부터 먹던 나를.


그래서 나는 미리 결심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자. 술자리에 초대받으면 빠지지 말자. 활기찬 사람처럼 행동해보자. 대학도서관에서 일하며 늘 부러워하던, 근로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또래 직원들처럼. 그게 나에게도 가능한 일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신규자 교육이 열리는 인재개발원은 꽤 멀었고, 스쿨버스처럼 단체 버스가 운행되었다. 처음 버스를 탄 날, 나는 각오를 하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미리 머릿속에서 연습해두었던 문장들이, 생각보다 쉽게 입 밖으로 나왔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 웃음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처음 사흘 정도는 여전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넷째 날부터는 인사를 건네는 일이 특별한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말을 건다는 행위는,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위험하지 않았다.


교육은 한 달간 이어졌다.
이미 짜여 있는 조로 나뉘어 움직였고, 남녀 비율과 나이대는 묘하게 균형이 맞아 있었다. 직렬도 제각각이었다. 행정, 전기, 환경, 세무, 토목, 사회복지, 건축, 사서. 그렇게 다양한 직렬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수업은 큰 강당에서 진행되었고,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풍경은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과 분명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들떠 있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공부한 끝에 도착한 자리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수업이 끝나면 거의 매일 술자리가 이어졌다. 나는 이번에는 빠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기에, 불러주는 자리에는 모두 나갔다. 조끼리, 때로는 다른 조까지 합쳐 열댓 명이 함께 모여 술을 마셨다. 다들 곧 월급을 받게 될 사람들이라 그런지 돈을 쓰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처음 이 주 동안은 분명 즐거웠다.
서로 몰랐던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이 오가고, 관계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느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적극적인 사람으로 기억했고, 나 역시 내가 원하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능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삼 주째가 되자, 그 방식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감각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술자리, 시끄러운 음악과 어두운 조명, 점점 무뎌지는 웃음. 지갑이 가벼워지는 것도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이 시간이 여전히 관계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처음처럼 새롭지도 않았고, 더 깊어지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관계가 깊어지는 데에는 술의 양보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오래 동경해왔던 왁자지껄한 관계들에 대한 갈증은, 이미 충분히 해소되었다는 것을. 나는 그 안에 실제로 들어와 있었고, 충분히 경험했다. 더 이상 멀리서 상상하며 부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도 분명해졌다. 나는 저녁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가 끝나면 조용한 공간으로 돌아와 혼자 쉬는 쪽이 더 잘 맞았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그런 시간이 나를 회복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고, 그래서 늘 그런 나 자신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어울리지 않는 삶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나는 원하면 어울릴 수 있고, 원하지 않으면 혼자 있어도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해 더 이상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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