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카

레이를 사랑하는 일

by 김태은

어릴 때부터 나는 네모 반듯한 차를 좋아했다. 그 시작은 초등학생 때 다니던 학원의 선생님 차였다. 색은 노랑과 연두 사이, 채도가 낮은 묘한 빛깔이었고, 이름은 큐브. 2000년대의 거리에서는 유난히 눈에 띄는 차였다. 정직하게 네모진 실루엣이 어린 나에게는 이상할 만큼 안온한 낯섦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늘 회초리를 들고 있었고, 손바닥을 아프도록 때리는 사람이라 좋아할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차만은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그 차를 보면 마음이 사뿐거렸다.


열두 살, 인생의 첫 번째 드림카였다.


스무 살을 넘긴 어느 해, 나는 또 다른 네모난 차와 사랑에 빠졌다. 바로 레이. 이름마저도 귀여웠다. 면허만 있고 운전은 전혀 못 하던 나는 ‘첫 차는 꼭 레이’라고, 어떤 근거도 없이 단번에 결심해버렸다. 성능도, 가격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이 차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선택이었지만, 그 결심이 이상하게 부끄럽지 않다. 그 시절의 나는 마음이 가는 것을 솔직하게 믿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자, 마음 한쪽에서 오래 눌려 있던 스위치가 켜지는 듯했다. 아, 이제 정말 차를 사도 되는구나— 그 역시 근거는 없었지만 오래 기다린 감각이었다. 나는 이런 ‘느낌’을 흘려보내지 않는 사람이었고, 계약직으로 일하며 모은 천만 원 남짓을 기꺼 쓸 준비를 했다.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만류했다. 대부분은 아반떼를 추천했지만, 이미 마음은 그곳에 없었다.


아빠와 함께 중고차 매장에 가서 흰색, 민트색, 아이보리색 레이를 차례로 보고 또 보며, 나만의 레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날 바로 샀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인 바로 그 레이를.


10월 1일.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날보다도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나만의 기념일이 되었다.


문제는 운전이었다. 면허는 있었지만 경험은 없었기에,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태워주며 운전 연수를 해주었다. 온화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보며, 가족끼리 운전 연수를 하지 말라는 말의 진짜 의미도 알 수 있었다.

그 위태롭고 조마조마한 며칠을 지나, 나는 레이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그 후로 일곱 해 동안 나는 이 차와 함께 계절을 여러 번 건너왔다. 6만 킬로에서 출발했던 숫자는 어느새 10만 킬로를 넘었고, 길에는 레이가 훨씬 많아졌지만 대부분은 신형이었다. 신형이 늘어날수록 나의 구형 레이는 점점 드문 존재가 되었고, 그래서인지 더 사랑스러웠다. 오래 본 만큼, 더 깊이 정이 드는 물건처럼.


가끔은 생각한다.

내 드림카가 람보르기니 같은 것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랬다면 ‘드림카를 가졌다’는 단순한 기쁨도, ‘그 드림카를 일곱 해 동안 아껴 탄다’는 묘한 만족도 몰랐을 것이다. 현실적인 차를 고르며, 언젠가의 언젠가를 기다리는 마음만 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레이가 종종 아프다. 오래된 차가 그렇듯, 예상보다 큰 수리비가 나올 때도 있다. 통장이 타격을 입어도 아까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때그때 고쳐주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더 큰 고장이 나고, 더는 고칠 수 없게 될 날도 생각해본다.


그럴 때면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그럼 다음엔 전기차 레이를 살래.”

남편은 웃으며 넘기지만, 사실 나는 진담이 더 크다. 지금의 레이를 보내게 된다면, 나는 또 다른 레이를 데려오고 싶다. 아마 나는, 처음 마음이 향하던 모양을 오래 곁에 두고 싶은지도 모른다.


열두 살의 마음이 좋아했던 네모난 차를 지금도 타고 있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이상할 만큼 오랜 시간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네모난 차와 함께 또 몇 번의 계절을 건너고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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