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 한 봉지가 가진 힘
가끔은 미치도록 젤리가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는 젤리를 아주 좋아한다. 만약 하늘에서 누군가 내려와 “그렇게 젤리만 생각하면 하루 세 끼를 젤리만 먹게 해주겠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나는 망설임 없이 기뻐할 것이다. 매 끼니가 기대되는 삶이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종류는 가리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하리보의 복숭아빛 젤리를 특히 사랑한다. 곰 젤리처럼 질기지 않고, 한입에 들어오는 크기가 딱 좋고, 혀끝에서 새콤달콤하게 터지는 맛과 손가락 끝에 남는 하얀 가루까지—모든 요소가 내 기준에서 완벽하다.
물론 나도 참을 수 있을 만큼은 참는 어른이다. 젤리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사탕·초콜릿·젤리 중 충치 위험이 가장 높은 게 젤리라는 말도 기억한다. 스무 살 중반, 충치가 한꺼번에 생겼던 끔찍한 경험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젤리 때문이었다.
내가 젤리를 떠올리는 방식은 약간 담배와 닮았다. 치기 어린 시절 몇 년간 담배를 피웠는데, 끊은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피곤하거나 지치면 문득 생각이 난다. 물론 다시 피우진 않는다. 그냥 ‘떠오르는’ 것이다.
젤리도 비슷하다. 다만 담배가 ‘아주’ 힘들 때 떠오른다면, 젤리는 ‘약간’ 힘들어도 떠오른다. 하루를 살다 보면 ‘약간’ 힘든 순간은 몇 번이고 찾아오기 때문에, 결국 젤리는 하루에도 몇 차례나 떠오르는 셈이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안 돼. 그제도 먹었잖아. 매일 젤리만 먹을 순 없지— 하고. 그리고 대부분은 잘 참는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닿을 때가 있다. 마음 안쪽에서 켜켜이 쌓여온 감정이 어느 순간 터질 듯 커져, 담배까지 떠오르는 날이면 그때가 바로 젤리를 먹어야 하는 날이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나는 오랫동안 담배 대신 젤리로 버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면 아이가 깊이 잠들어 집이 완전히 고요해진 밤 열한 시쯤,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연다. 나의 ‘젤리 외출’을 허락해주는 유일한 시간이다. 문이 쾅 하고 닫힐까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아 천천히 닫는다. 아이가 깨어 “엄마 어디 가?” 하고 묻지 않도록.
낮에는 젤리를 먹을 수 없다. 아이는 예리한 눈을 가졌고, 내가 무엇을 씹기만 해도 즉시 알아챌 것이다. "엄마 뭐 먹어? 젤리야? 나도 줘!" 하고 난리가 날 게 뻔하다. 그래서 젤리는 자연스럽게 ‘밤의 음식’이 되었다. 나만 알고, 나만 누리는 조그만 비밀처럼.
편의점에 들어서는 순간, 네온사인 아래에 정렬된 하리보 젤리를 보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세상에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도, 젤리 한 봉지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
이천 원을 계산하고 문에서 나오자마자 봉지를 뜯는다. 젤리를 주머니에 넣고 하나씩 꺼내 먹으며 동네를 돈다. 젤리 하나에 한 골목, 또 하나에 다음 골목. 그날의 새까만 감정들이 젤리의 달콤함에 서서히 녹아 사라진다.
가끔은 이런 외출이 일주일에 세 번이나 이어지는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조그마한 죄책감과 조그마한 위안이 함께 따라온다.
젤리를 까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자주 먹으면 안 되는데…
그러고는 바로 다음 순간 이렇게 합리화한다.
그래도 이 불쾌함을 하루 종일 끌어안고 사는 것보단 낫지. 젤리 한 봉지로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사람마다 버티는 방식이 다르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잠든다.
나는 젤리를 먹는다. 젤리 한 봉지는 나를 다시 ‘평범한 나’로 돌려놓는 작고 은밀한 장치다.
젤리를 씹을 때마다 복숭아 향이 혀끝에 퍼지고, 부드럽게 사라질 때면 이상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힘든 하루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이제 괜찮다고, 누군가 조용히 말해주는 것처럼.
돌아오는 길, 쓰레기통에 빈 봉지를 버리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만 알고 있는 의식이 있다는 건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들키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해주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늦은 밤, 다시 집에 들어오면 불 꺼진 거실은 고요하다.
싱크대 위에 놓인 컵 하나와, 우리 집의 숨 같은 정적.
그 속에서 나는 젤리 한 봉지가 가진 이상할 만큼의 힘을 생각한다.
달콤했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때로는 나를 하루 더 앞으로 밀어주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은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