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의 사서

짧았기에 행복했던

by 김태은

고백하자면, 나는 8년 차 사서지만 자료실에서 일한 기억은 거의 없다. 손에 꼽을 만큼이다. 반 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짧고, 누군가에게는 기억조차 남지 않을 시간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짧은 시간이 내 마음속에서 유난히 길게 늘어져 있다.


우리 조직에는 묵은 규칙 같은 것이 있다. 첫 발령은 자료실. 이유는 단순하다. 자료실은 행정적인 업무가 가장 적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난도가 낮다고 여겨진다. 그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신입들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간다. 다만 내 차례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흐름에서 살짝 비켜나 있었다.


기존 직원 모두가 피하던 업무가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놓였다. 원래는 6급과 7급이 맡던 일이었지만, 내 손에 주어지는 순간 그 일의 이름은 바뀌었다. “신규라도 할 수 있는 자리.” 이름이 바뀌면 일도 가벼워질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름은 가벼워졌고, 일은 그대로였다.


나는 매일 민원과 서류 사이를 오갔다.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하루의 끝에는 늘 초과근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업무능력은 분명히 늘었다. 대신 내 안의 우울도 비례해서 자라났다. 그 두 가지는 묘하게도 늘 함께 움직였다.

그만두고 싶었다. 도서관을 벗어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장면을 나는 여러 번 상상했다. 마치 소설의 첫 문장을 머릿속에서 고치듯, 그 장면도 반복해서 연습했다. 어느 날은 아주 담담하게, 어느 날은 지나치게 극적으로. 다행히도,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정한 선배가 나를 붙잡았다.


“차라리 이동을 요청해 봐. 사직할 용기로.”


그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결국 과장님을 찾아갔다. 아주 정중하게, 그러나 되돌릴 수 없다는 얼굴로. 그렇게 해서 나는, 뒤늦게 자료실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자료실은 사무실과 달랐다. 최소한의 직원만 있었고, 팀장님도 없었다. 데스크 뒤편에는 작은 골방 같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이 내 자리였다. 문은 늘 열려 있었지만, 이용자가 그 문턱을 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무실에서는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숨을 고르게 쉬어야 했지만, 자료실의 공기는 조금 달랐다. 고요했지만 삭막하지 않았다. 그 차이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히 느낄 수는 있었다.


물론 자료실이라고 해서 언제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만석이 된 날의 자료실은 소동으로 가득 찼고, 내가 일했던 도서관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만석이었다. 자리다툼이 있었고, 노트북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가 있었고, 휴대전화 통화도 있었다. “내가 먼저였다”고 주장하는 신문 보는 할아버지들도 있었고, 도서관에는 책이 없는데 분명 반납했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파도가 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일이 힘들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지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곳의 혼란은 나에게 위협이 아니라 배경음처럼 느껴졌다. 예측 가능했고,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동료들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무실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책상에 갇혀 있었지만, 자료실에서는 같은 공간을 함께 지켜야 했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바로 나눌 수 있었고, 힘든 일도 잠깐의 농담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건 생각보다 큰 차이였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 출근 전, 퇴근 후, 혹은 휴관일의 자료실.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책들 사이를 걷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사서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햇빛이 통창을 통해 들어와 서가 위에 그림자를 한 겹씩 쌓아 올릴 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나는 지금, 내가 오래 상상해 온 일을 하고 있구나.


밤의 자료실도 좋았다. 초과근무가 길어질 때면 나는 모든 조명을 켜지 않았다. 혹여 이용자가 착각할까 봐, 내 자리의 전등만 켰다. 골방의 불빛과 바깥 가로등의 빛이 섞여 흐르던 어두운 서가는 믿을 수 없게 아름다웠다. 책장은 거대한 수족관 같았고, 나는 그 안에 잠긴 작은 물고기 같았다.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은, 숨만 쉬면 되는 물고기.


자료실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네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는 다시 다른 자리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장면들은 유난히 반짝인다. 오래전에 읽었던 한 권의 소설처럼.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이상할 만큼 선명한 상태로.


그리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도서관을 떠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짧았던 자료실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