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업무일까, 노는 것일까
도서관을 종종 찾는 이들이라면 ‘북큐레이션’ 코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서가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책을 선별해 전시하는 공간. 수많은 책 속에서 이용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책들을 골라내어,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듯 진열하는 일이다. 책의 표지가 조금 더 잘 보이도록 각도를 조정하고, 짧은 문장을 붙여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 앞에 서 있으면, 도서관이 아주 잠깐 다른 장소처럼 느껴진다.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책과 사람이 만나도록 중재하는 장소처럼.
나는 사서가 되기 전부터 이 일을 꼭 해보고 싶었다. 도서관에는 무수히 많은 책이 있지만, 이용자의 손길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채 서가에 묻히는 책이 더 많다. 그런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꺼내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이 책, 아직 많은 분들이 모르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그 말을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책 대신 전해주고 싶었다.
대학도서관에서 계약직으로 잠깐 일하던 시절에는, 그 꿈을 아주 잠시나마 실현할 수 있었다. 자료실에서 한 권 한 권 직접 수서하고, 그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책을 골라 북큐레이션 서가에 올렸다. 진열대에 놓인 책이 하나둘 줄어들 때마다 이상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내가 고른 책이 누군가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기뻤다.
‘부디 마음에 들었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퇴근길에 괜히 한 번 더 서가를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서직 공무원이 된 이후, 북큐레이션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일’로 분류되지 않았다. 인력은 늘 부족했고, 한 명의 사서가 감당해야 할 업무는 끝이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으냐보다, 무엇을 처리해야 하느냐가 우선이었다.
자료실 사서를 예로 들면, 기본 업무만 해도 이미 하루가 꽉 찬다. 대출과 반납, 예약과 상호대차 처리, 민원 응대. 여기에 수서, 자료실 행사 운영, 각종 통계 작성, 안내문 제작, 기증도서 정리가 더해진다. 그리고 관리 업무가 줄줄이 따라온다. 연체자 관리, 이용자 컴퓨터, 복합기, 도서관리시스템, 스마트도서관, 책바다와 책나래, 지역서점 바로대출, 정기간행물, 기간제 근로자, 국가근로, 청년일자리까지.
이 모든 것을 처리하고 나면, 하루는 이미 끝나 있다. 책을 고르고 추천하는 일은 늘 맨 마지막으로 밀린다. 아니, 밀릴 자리에조차 오르지 못한다. 북큐레이션은 꿈도 꿀 수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위’의 시선이었다. 관장이나 간부들에게 북큐레이션은 업무로 인식되지 않았다. 북큐레이션을 하려면 책을 읽고, 선별하고, 문장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업무가 아니라 ‘개인적 취향’으로 분류된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노는 것’에 가깝게 취급된다.
사서가 근무시간에 책을 읽는다니.
그것은 이곳에서 공식적인 일이 될 수 없었다.
언젠가 도서관대회에서 북큐레이션 관련 세션을 들은 적이 있다. 강연자는 유명한 공공도서관의 사서였다. 그는 북큐레이션이 사서의 고유한 업무이며,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료실 업무가 너무 많아서, 북큐레이션에 할애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떻게 분배해서 하시나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저희도 다 시간 없어요. 야근하며 하는 거예요. 초과근무하면서 책을 읽으시면 되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우리 도서관에서 ‘초과근무하며 책을 읽겠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시선, 미묘한 비아냥, 불필요한 오해들. 그런데 그 사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책을 읽는 것이 곧 일이고, 정당한 노동이라고.
그 순간 나는, 우리와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했다. 같은 직업, 같은 이름의 사서였지만, 전혀 다른 기준 위에 서 있었다.
물론 지자체마다 사정은 다르다. 어떤 도서관에는 북큐레이션 담당자가 따로 있고, 어떤 곳에는 사서의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서가가 있다. 그러나 내 도서관에는 북큐레이션 서가 자체가 없었다. 그런 걸 만들자고 말하는 순간, 공기가 묘하게 식었다. 가끔 열정 있는 사서가 “이번엔 북큐레이션을 해보자”고 제안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그런 거 할 시간 없어.”
모두가 각자의 업무에 치여 있었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에게 북큐레이션은 그런 일이었다. 있으면 좋지만, 할 수는 없는 일. 애써 해낸다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도서관 안에서라면 늘 그림자처럼 머물러야 하는 일.
나는 가끔 다른 도서관을 찾아간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에는 늘 북큐레이션 서가가 있다. 세련된 진열대, 사서의 이름이 적힌 추천 카드,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문장들. 그 앞에 서면 묘한 부러움이 밀려온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작은 축제 같은 풍경.
그곳에서 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다. 아마도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한, 그 기분을 실제로 알게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알 수 없음은, 오래된 책 냄새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은 채 지금도 내 곁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