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단단해지기까지

밤의 끝에서 불빛 하나가 켜질 때

by 김태은

십 대, 그리고 이십 대.
나는 늘 불안정했다.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파도에 휩쓸렸고,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섰다.

누군가의 애매한 말투,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짐작하려 애쓰던 시간들.
악의가 있었는지, 단순한 농담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끝내 그것을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밤이 되면 그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말끝의 억양, 웃음의 길이, 눈동자의 방향.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되감기듯 반복됐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깎아내렸다.

그런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점점 작아졌다.
우울증, 대인기피증.
거의 십 년을 그 안에서 헤매며 살았다.

그때 내가 바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저 평범해지는 것.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나에겐 도달하기 어려운 언덕 같았다.

친구가 있고, 사람들과 가볍게 웃을 수 있고.
집에 돌아와 그들의 말을 되새기지 않아도 되는 하루.
내가 잘못한 말을 찾아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밤에 울지 않고,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몇 시간을 뒤척이지 않고,
그냥 누우면 잠들 수 있는 밤.

그건 내가 매일 꿈꾸던 삶이었다.
소박했지만, 내겐 가장 먼 꿈이었다.

그 꿈은 아주 느리게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몸 안의 돌덩이가
조금 가벼워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네 해 전쯤,
나는 마침내 ‘이제는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침대에 눕고 이십 분 안에 잠이 든다.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고,
조금은 마음이 통하는 이들도 생겼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지 않고,
자다가 땀에 젖어 깨어나는 일도 없다.
낯선 사람에게도, 어려운 사람에게도 조심스럽지만 편하게 말을 건다.

최근에는, 평온함 속에서도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는 걸 느낀다.

불편한 요구는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고,
누군가 상처를 주려 해도 이제는 나를 지킬 수 있다.

직장 안에서 부당한 일이 생기면 이건 부당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 말을 할 때도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단어를 고른다.

이 변화가 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찬란했어야 할 십 대와 이십 대를 그 어둠 속에 흘려보냈다. 그게 가끔은 안타깝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시간들도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결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 글을 쓰려 한다.
혹시나, 예전의 나처럼 그저 평범함을 바라는 누군가가 있을까 해서.

밤의 끝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천천히 켜지는 장면처럼.
그때의 나는 그렇게, 아주 천천히
다시 세상으로 걸어나왔다.

내가 어떻게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났는지,

어떻게 내 마음을 세워왔는지,
어떻게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보려 한다.

누군가 이 기록을 읽으며
자신의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빛 하나를 떠올릴 수 있기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