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금이 가던 시절

마음이 처음 부서지던 날

by 김태은

나는 어려운 십 대를 보냈다.
왕따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경계선 위에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들 무리에 섞여 웃었고,
어느 날은 그 무리의 바깥에서 혼자 걸었다.

열두 살.
한 친구에게 마음을 다 주었다.
그 친구가 다른 아이와 웃을 때마다,
이유 모를 질투가 내 안에서 천천히 부풀었다.
다시 나를 좋아하게 만들 방법은 몰랐고,
결국 상처만 남았다.

열세 살.
짝꿍이 내게 한 장의 쪽지를 보여주었다.
둥글고 예쁜 글씨였다.
하지만 그 안의 말들은 차가웠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 아이였다.
그 날, 내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닫혔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사소한 대화도 어려웠고, 말 한마디 꺼내는 일도 힘들었다.

누군가는 내 말이 재미없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편했지만, 그 속엔 묘한 무게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면 달라질 줄 알았다.
먼저 다가와준 친구가 있었고, 단짝처럼 지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다른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또 내가 마음을 너무 많이 준 탓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짐작했다.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교실 형광등이 창문에 비쳤다.
그 빛이 유리창을 따라 흘러내리듯 반사되고,

나는 그 아래 앉아 조용히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누군가 복도 끝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게 내 마음속의 마지막 울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무너졌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모든 게 무겁고, 느리게 흘렀다.

그때의 나는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
창밖의 어두운 하늘처럼,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열일곱.
집에 틀어박혔다.
그때는 ‘히키코모리’라는 단어가 흔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딱 맞았다.
우울증에 걸린 히키코모리.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특히 또래 여학생들 앞에 서면 몸이 굳고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과에도 가봤지만 의사의 말은 늘 짧고 형식적이었다. 그 짧은 대화로는 내 마음의 깊이를 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울었다.
베개가 마르기 전에 다시 젖곤 했다.
아침이 오면 눈가가 부어 있었고, 거울 속 얼굴이 조금씩 낯설어졌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피부과에 갔다.
의사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조용히 물었다.
“무엇이 그렇게 슬프게 하나요?”
그 질문이 이상하게도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닫힌 내 방의 문 너머로 엄마의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때로는 부모님이 낮은 목소리로 다투는 소리도 들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토록 선하고 단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왜 나만 이렇게 부서져 있을까.

그럼에도 부모님의 묵묵한 기다림과 세월이 나를 조금씩 밀어 올렸다.
열아홉까지의 긴 어둠을 지나 조심스레 책을 펼쳤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후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목표가 생기자, 내 안의 어둠은 조금씩 옅어졌다.
울 일도 줄었다.
밤마다 창문을 열면 겨울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고, 그 차가운 냄새 속에서 나는 조금씩 살아났다.

스무 살.
그렇게 또래들과 같은 시기에 대학에 합격했다.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함께였다.
그 믿음은 어딘가 가볍고, 그래서 오히려 애틋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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