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부서진 순간

아무렇지 않은 말의 무게

by 김태은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어딘가 삐걱거렸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그건 잠시 스쳤다 사라지는 짧은 햇살 같은 희망이었고,
기분의 착시였다.

3년을 혼자 지냈는데, 갑자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리 없었다.

대인기피증은 여전했다.
특히 여학생들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이 먼저 굳고, 손바닥은 젖어 있었다.
입을 열면 단어들이 혀끝에서 부서져 가루처럼 흩어졌다.

남자 동기들은 상대적으로 친절했다.
내 더듬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주었고,
대화가 멈춰 서면 그 정적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잠시나마 사람 사이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그 친절이 또 다른 오해의 불씨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여자 동기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입술이 단단히 다물어졌다.
그들에게는 내가 더듬고 창백해지는 순간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말을 하지 않는 사람, 혹은 선택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소문은 조용하게, 그러나 빠르게 퍼졌다.
좁은 학과의 공기가 천천히 식어갔다.
내가 지나가면 말소리가 멈추었다.
책상 위에서 펜이 멎는 소리, 종이 위 잉크 냄새가 갑자기 선명해지는 순간.
그게 내 주변의 풍경이었다.

몇몇 남자 동기들과 선배들은 그런 나를 안쓰러워했다. 이상하리만치 그때부터 오해는 더욱 커졌다.

열일곱 때까지의 나는 그냥 혼자였다.
그저 혼자인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서질 만큼 약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임을 넘어서 뒤따라오는 시선과 무시가 함께였다.

버티기 어려웠다. 솔직히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열일곱 때처럼 그렇게 간단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종종 나를 챙겨주던 여자 선배에게 조심스레 털어놓기로 했다.

처음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혀끝이 마르고,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천천히 말을 꺼냈다.
마음이 조금 망가진 것 같다고, 특히 여자아이들 앞에 서면 몸이 얼어붙는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한 것 같다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위로 몇 마디를 건넸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이해해줄 줄 알았다.

며칠 뒤, 빈 교실로 불려갔다.
문을 열자 대여섯 명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햇빛은 기울어 창문 한쪽으로만 길게 내려앉아 있었고, 먼지는 그 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차가운 공기, 무표정한 얼굴들, 짧고 단단한 목소리들.

“정신병자 주제에 쇼하지 마.”

그 말은 바닥에 떨어진 금속처럼 작게 울렸다.

그 순간, 머리 뒤쪽이 서늘해졌다.
안쪽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소리를 실제로 들은 것만 같았다.
입술이 떨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선배에게 건넸던 마음은 그녀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돌아왔다.
비웃음은 소리보다 조용했지만 더 깊이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방법을 잃었다.
휴학계를 냈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방 안은 늘 어두웠다.
낮에도 커튼을 치고 살았다.
불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어딘가에 붙어 있는 그림자 같았다.
움직이지 않고, 숨만 쉬는 존재.

그렇게 숨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게 나의 한계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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