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엄마도 얼죽아

by 이유진

월요일, 점심이 좀 넘은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바빠?


짧은 단어 속에서 나는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일단 엄마의 목소리에 다급함은 없어 보였으므로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이미 자체해결이 된 상태라고 판단했다. 바쁘냐고 물어본다는 것은 내가 바쁘지 않을 때 다시 전화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 그렇지만 바빠도 들어달라는 뜻이기도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 톤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리 큰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괜찮아 말해.


난 빠쁘지만 궁금한 것을 참기 싫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궁금하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이고 그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내가 미쳤나 봐.로 엄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말에 시원한 뭇국이 생각나 엄마와 장을 보면서 양지와 무, 그리고 대파를 샀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들과 엄마의 국간장 그리고 멸치 액젓의 조합으로 구수하게 끓인 소고기 뭇국을 먹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소고기 뭇국을 끓이기 위해 고기 육수를 내다가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냄비 속 소고기가 까맣게 다 탈 때까지 깨지 않았다는 것을 내게 고백했다. 갑자기 등에 땀이 쭉 나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몇 년 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시래기를 삶는다고 큰 솥을 가스 불에 얹어 놓고, 동네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 버린 일. 엄마의 아래 집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집에는 사람이 없고 할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으시고, 그래서 나에게 현관문을 강제로 열어야겠다며 동의를 구하기 위해 관리소장님이 전화를 한 것이다. 회사에서 혼비백산이 돼 차를 몰고 달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다행히 119에 전화하기 직전에 엄마가 집에 도착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 집에 연기가 가득했고, 그 연기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빠지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다.


순간 예의 일이 떠올라 왜 이런 일이 또 일어난 것이며 도대체 왜 불에 무언가를 얹어 놓고 잠을 잘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이게 얼마나 크고 어마어마한 일이 될 수도 있었는지 정녕 모르는 것인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이 모든 것이 떠오른 순간에 나는 훌륭하게도 그 말을 삼키고 3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갑자기 엄마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불에 뭘 얹어 놓으면 그냥 식탁 의자에 앉아 있어야겠어. 난 소파에 눕기만 하면 그냥 잠이 쏟아지니까 말이야. 냄비가 까맣게 다 탔는데 그건 내가 다 닦아 놓았고, 냄새도 아까부터 양쪽 창을 다 열어놔서 네가 올 때쯤에 다 빠질 것 같아. 내가 왜 이러니 정말. 김서방 보기 미안해서 죽겠네 진짜."


그때 깨달았다. 엄마는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 자신이 어떤 주의를 해야 하는지까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속으로 나보다 더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안 사실은 엄마는 내가 화를 낼까 봐 사위에게 먼저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남편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일단 안심을 시켜드리고, 혹시 의기소침해져 계실 엄마를 위해 퇴근하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집으로 갔는데, 울상으로 맞이한 엄마는 남편이 건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고 활짝 웃으며 아이처럼 기뻐하셨다고 한다. 아무튼 엄마도 얼죽아다.


퇴근하니 우리 집은 숯불갈비 집으로 변신해 있었다. 거실에도 방에도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고기 굽는 냄새로 꽉 차 있었다. 군데군데 엄마는 향초를 피워놨지만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냄새인 것 같았다. 당분간 고기는 못 먹을 것 같다. 특히 소고기 뭇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