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주변 사람들은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저를 보고 부러워할 때도 있지만, 사실 저는 엄마와 자주 다투곤합니다. 한 달 넘게 우리 집에 엄마를 모셔야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남편은 제 손을 잡고, 제발 엄마와 잘 지내기를 간절히 부탁했으니까요. 이렇게 자주 다투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엄마가 고집스러워진 이유도 있겠지만, 저 또한 만만치 않기때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넘어갈 일도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결코 넘어가지 못하는 저의 못된 성격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오늘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엄마와 저는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 것은 엄마의 친한 동생의 딸내미의 딸내미 얘기때문이었습니다. 왜 내가 엄마 지인의 딸내미의 딸내미의 학교생활에 대해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의 이야기 속에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제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얘길했는데, 이야기의 끝은 엄마를 이렇게 무시하면 되냐는 것으로 결론이 나 버린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거의 모든 다툼의 끝은 제가 엄마를 무시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합니다. 거의 깔대기 수준으로 말입니다. 엄마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거나, 공감하지 못하면 엄마는 제가 엄마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이런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합니다. 넌 너무 말을 못되게 한다, 넌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말을 엄마는 반복에 반복에 반복하고, 그런게 아니라고 저는 또 반복에 반복에 반복을 하다가 결국 서로 말이 없어져버립니다. 엄마는 남이면 이런 소리를 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받고 그럴 때마다 제발 나를 손님처럼 대해줘.라는 의미없는 요구를 합니다. 서로 각 자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끝이 없는 평행선을 걷고 있는 것이지요. 서로에게 예의를 요구하고, 서로에게 다정을 바라면서 정작 본인은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런 엄마와 저에게 과연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대화가 무슨 도움이 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라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예의 있는 대화와 엄마에 대한 존중이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물론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없이 뱉어 버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저는 상처를 입지만, 그 상처를 다시 엄마에게 돌려주어서야 안되겠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이제 엄마와의 시간은 한 달을 향해 갑니다. 하루에 꼭 한 번씩은 티격태격하는 모녀를 보고, 남편은 조마조마해 못 살겠다고 합니다. 엄마와 보내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시간을 아름답게 보낼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밀려듭니다. 반성문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엄마와 종이달 마지막회를 보러 거실로 나가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