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의 세입자가 이사 가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세입자와 이사 날짜를 정하는 등의 일을 엄마를 대신해서 제가 했기 때문에 오늘도 세입자는 저에게 이사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이사를 시작하고, 마무리되면 연락을 주기로 하고, 관리비와 장기충당수선금까지 정리해서 입금해주어야 할 금액을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엄마 통장에는 이미 세입자에게 반환해 줄 보증금이 준비되어 있었죠.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세입자는 이사를 평일로 정했고, 평일에는 남편도 저도 엄마의 은행업무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엄마가 저의 동네 지리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은행까지 혼자 가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은행업무를 잘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송금을 하는 것인데, 그건 엄마가 혼자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그렇다고 휴가를 낼 수도 없고 해서 며칠 전부터 엄마에게 인터넷뱅킹으로 돈 보내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큰돈을 보내야 하는 상황은 저도 조금 긴장되는데 엄마는 더 그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엄마가 지도를 보고 은행을 찾아가는 일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날 밤 엄마와 저는 연습 삼아 '천 원 보내기'를 해 보았습니다. 몇 번의 예습과 복습을 반복했지만 도저히 엄마에게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지각을 달고 오전에 집에 있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마침 수업이 예정돼 있어서 그것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저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인증서를 저장해 엄마 대신 은행 업무를 보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세입자의 이사가 시작되었고, 세입자는 몇 장의 빈방 사진과 영수증을 보내왔습니다. 이로서 이사는 마무리되었고, 엄마가 세입자에게 보내야 할 최종 입금액이 정해졌습니다. 장기충당수선금과 관리비는 일단 금액이 얼마 되지 않아 미리 보내고, 큰 액수의 보증금은 엄마의 인증서로 엄마 통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1회 한도를 꽉 채워서 몇 번에 걸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세입자는 새로운 집에 잔금을 치르기 위해 그 돈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순조롭게 진행되던 이체 과정에서 뭔가 확인해야 하는 화면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망했어요!
본인이 보내는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맙. 소. 사. 누군가가 엄마에게 전화해서 큰 금액의 돈을 보내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텐데, 스마트 폰에 걸려온 전화에 대한 응답으로 전화화면에서 숫자판 화면으로 변경한 다음 숫자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을 엄마는 도저히 실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제 등에도 땀이 주르륵 흘렸습니다. 엄마에게로 순간이동을 할 수도 없고, 엄마에게 아무리 스마트폰 이용법을 설명한다고 한들 엄마가 본인인증을 해낼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 상황을 당장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머리를 엄청난 속도로 돌려보았습니다.
엄마 달려!
엄마는 달려야 했어요. 아파트 앞에 있는 잔치국수 가게로 말이죠. 지금 당장 엄마를 도와줄 사람은 국수가게 사장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가끔 저녁이 하기 싫거나 하면 남편과 둘이 갔던 아파트 바로 앞 국수 가게가 있는데, 얼마 전 엄마와도 갔었던 곳이었어요. 시간은 오전 11시가 다 된 시간, 바쁠 것 같았지만 염치를 불구하고 엄마를 그리로 보냈죠. 그리고 검색을 해서 가게로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사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엄마가 도착했고, 사장님은 영문도 모르는 채 제가 부탁하는 일을 처리해 주셨어요.
돈을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아직 엄마는 가게에 남아 사장님과 커피를 한 잔 하고 있다고 했어요. 정말 사장님은 다정한 분이시구나라고 생각했죠. 퇴근길에 박카스를 한 박스 사서 들렀습니다. 사장님은 그렇게 당황스러운 순간에 본인을 떠올려주어 더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생활이 익숙해진 요즘에는 이웃이라는 단어보다는 옆집 사람, 위층 남자, 아랫집 아이 등과 같은 말로 이웃이라는 단어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을 이웃.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저에게 선물처럼 이웃이 생긴 것 같습니다. 엄마가 준 선물 같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