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자 경순씨

by 이유진

경순씨는 아홉 살에 경상북도 점촌이라는 깡촌에서 사람 복작거리는 대구로 이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사라고 하기에는 뭔가 궁색한 느낌이다. 첫째,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것. 둘째, 경순씨 식구가 대구로 이사한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몰랐다는 것, 마지막으로 통 소식이 묘연했던 아버지가 야밤에 몰래 와서 그 길로 모두가 옷가지만 가지고 대구로 떠나왔기 때문이다. 그럼 왜 경순씨 아버지는 그 야밤에 경순씨 가족을 데리고 대구로 떠난 걸까.


경순씨의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고, 미군 부대에서 근무한 엘리트였다고 한다. 6년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삼십 대 초반 젊은 나이에 한 팔을 잃고 말았다. 전쟁 중에도 어디 하나 상한데 없이 돌아온 아들이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할머니는 매일 땅을 치며 통곡했고, 다들 그런 불운이 한 달만 빨리 왔어도 나라의 보상이라도 받아 경순네가 살 만은 했을 텐데 하고 쓸데없는 위로를 했다. 동네 사람들은 자식까지 딸려 그렇게 외팔이 된 경순씨 아버지에게 이장 직이라도 맡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아버지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 승낙했다. 그런데 성실하고 반듯했던 아버지는 자꾸만 다른 사람이 되어 가더니, 급기야는 동네 사람들의 돈을 떼먹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누구는 못 믿을 게 사람이라고 욕을 했고, 누구는 형을 따라 빨갱이 물이 들어 북으로 쫒아간 거라고 했지만,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그저 경순씨는 왜인지 모르게 아버지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렇게 아버지는 가족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홉 살 경순씨는 그리해서 대구라는 도시에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외팔로 하루하루 벌어 가족을 부양했다. 넉넉하고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은 했고, 그 와중에 경순씨에게 여동생과 남동생들이 생겨 갓난아이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는 단란한 가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지 않던 날이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울다가 동생들은 이미 잠이 들어버렸고, 아버지가 오면 뭐라도 먹고 자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경순씨는 억지로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대문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손은 비어 있었다. 바로 다음 날, 어머니는 새벽부터 어디론가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 넷을 굶기지 않기 위해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역전에 나가 트럭에서 떨어진 석탄가루를 주어다 팔았다. 그 이후로 굶는 날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자, 경순씨는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의 산 증인이 되어 집안일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방직공장에서 기술을 배울 때에도 경순씨는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어린 동생 기저귀를 빨며 살림을 도맡아 했다. 스무 살이 넘자 친구들은 이미 기술자가 되어 돈을 벌어오기 시작했고, 어리기만 했던 여동생도 이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어머니 대신 살림만 하느라 경순씨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가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경순씨에게는 상황을 반전시킬 패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경순씨가 집에서 살림만 하는 답답한 아가씨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주말에는 엄마가 큰 마음을 먹고 맞춰준 주름치마와 블라우스를 입고 친구들과 꽃놀이도 하고, 밤에는 동생들을 재워놓고 몰래 야간 극장에도 다녔으며, 어쩌다 서커스 공연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친구들을 꼬셔서 구경을 가기도 했고, 가끔 옆집 오빠와 러브레터도 주고받는 실은 도시의 아가씨였던 것이다. 아가씨가 된 경순씨는 옆집에 사는 향숙이 언니를 좋아했다. 언니에게는 항상 경순씨가 맡아보지도 못했던 좋은 냄새가 났고, 언니네 집에 놀러 가 언니 옆에 앉아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온 날이면 그 좋은 냄새가 경순씨에게도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언니의 이야기 속에는 늘 서울에 있는 사촌오빠가 있었다. 사실 경순씨는 오빠 자랑을 언니가 왜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아직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더욱이 옆집 오빠가 장난처럼 자신에게 시집오라는 그 말을 완전히 거짓으로 믿기 싫은 마음이 있었기에 언니의 말은 듣고도 모른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여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시집가야 잘 살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향숙이 언니의 사촌 오빠와 선을 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 현실에서 가장 알맞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선을 보러 온 남자는 막냇동생 발톱에 때만큼도 경순씨와 부모님 마음에 차지 않는 사람이었다. 선은 불발로 끝이났지만, 향숙이 언니 식구들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결혼을 시키자고 문턱이 닳도록 경순씨 집을 드나들었다. 결국 선을 보고 1년 후 경순씨 아버지의 마음이 넘어가버렸다.




서울로 올라온 경순씨의 생활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래도 서울로 큰 딸을 시집보낸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경순씨가 지내야 하는 서울은 별로 서울 답지 못했다. 공장에 딸린 사옥에서 지내야 했고, 제대로 갖춰진 살림살이와 이불도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남편이라는 사람이 좋아지지도 않고, 매일매일 집만 그리워하던 경순씨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다고. 정 그렇다면 다시 대구로 오라는 아버지의 답장을 손에 든 경순씨는 얼마나 기뻤던가.


그런데 운명이라는 것은, 인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약한 끈이 아니었다. 그 새 경순씨에게는 아이가 생겨버린 것이다. 결국 경순씨는 어쩔 수 없이 바라던 삶을 접고, 처해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경순씨가 아들을 낳자 경순씨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어떤 이유가 됐든 경순씨는 아홉 살부터 대구라는 도시에 살았던 도시 여자였고, 서울로 시집을 간 큰 딸이었으므로 아무리 형편이 좋지 못하다 해도 서울에 남아 있고 싶었지만, 남편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에 짐을 싸서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시골에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아주버님과 형님, 시누이들과 시동생까지 있어야 할 시댁 식구는 모조리 모여있었다. 그 와중에 시누이들과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없이 빈 몸으로 시집 온 경순씨를 은근히 무시하고 멸시했다. 그럴 때마다 경순씨는 주눅이 들기보다 빈 몸으로 시집올 형편이 아니었으면, 대구에서 이러 시골 골짜기까지 내가 왜 왔겠나. 라며 콧방귀를 뀌었고, 남편이 실수라도 하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에게 자식 잘 못 키워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당당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경순씨는 아버지의 말씀이 참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더 좋은 집에 시집갔더라면 한 평생 눈치 보면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이 남자와 결혼하고, 이 집에 시집와서 기 한번 죽지 않고 큰소리치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딸도 만날 수 있지 않았냐며, 경순씨가 나의 볼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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