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1학년 아이들의 이름을 아직 다 외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 수업 중인 1학년 2반은 좀 알겠는데, 1학년 1반 아이들은 얼굴을 보면 머리가 하얗게 될 때가 많다. 1학년 1반 아이들이 도서관에 들어올 때에는 그래서 약간 긴장하게 된다. 대놓고 이름이 뭐지?라고 물어볼 때도 있는데 상처를 좀 덜 받을 것 같은 남자아이들에게이다. 여자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어본다는 것 일단 사과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뭐 사과까지 할 수도 있는데, 나는 안다 내가 이전에도 수도 없이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을 것이라는 걸.
세은이는 책을 아주 잘 읽는 아이다. 내가 추천해 주는 책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하는 친구이다. 재미가 없었어요라고 말할지언정 중간에 포기는 안 하기 때문에 늘 기특해하는데, 문제는 자꾸 내가 세은이의 이름을 다른 아이와 혼동한다는 것. 나를 좀 이해해 달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변명을 하면 이렇다. 1학년 1반에는 김세은, 김예은, 김예원이 나란히 있다. 아직 초등학생 티를 다 못 벗은 아이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보여 아이들을 볼 때면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된다. 게다가 세명 모두 도서관에 자주 온다. 이런 상황에서 셋을 완벽히 구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오늘은 예은과 예원이 점심시간에 와서 내가 추천해 주었던 온다리쿠의 밤의 피크닉을 읽고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채리새우 비밀글입니다. 를 추천해 주고 보냈는데, 방과 후에 세은이가 들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마어마한 실수를 한다. 세은이에게 점심에 빌려간 책이 있는데 다른 책을 가져가려고 하느냐고 물은 것. 세은이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바로 실수했다는 걸 눈치채자 "선생님, 저 세은이요."라고 말해주었다. 미안미안해하며 허둥대는 나에 비해 세은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했다.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세은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면 할수록, 세은이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예원아, 세연아 이런 이름들이 튀어나왔다. 그럴 때마다 세은이가 조용히 "선생님, 세은이요."라고 고쳐주었다. 민망해하는 내 모습이 너무 창피했는데,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제 세은이가 선생님에게 인사할 때 손으로 세모 모양을 만들며 인사하는 거 어때? 선생님이 세모의 "세"를 떠올리고, 바로 "세은"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야.
세은이는 손으로 오뚝 솟은 산 모양을 만들며 이렇게요? 했다. 맞아 이렇게. 나도 함께 산 모양을 뽀죡하게 만들어 보였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웃겼지만, 세은이와 나만의 약속이 하나 생겨서 괜히 신이 났다.
손으로 세모를 만드는 이미지가 너무 없어서, 어렵게 링크를 건다.
요런 모양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