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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un 16. 2024

책 읽기를 위한 책

매일 읽겠습니다(황보름)

책과 가까워지는 53편의 에세이, 황보름 작가의 '매일 읽겠습니다'는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에 관한 책이다. 그중에서 독서모임에 관한 내용을 발췌독[拔萃讀]을 해보았다. 




          EBS 프로그램 <지식채널 e>의 '시험의 목적' 편은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위해 치르는 철학 시험 '바칼로레아'를 다룬다. 시험에는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 등 짧은 문장으로 세 개의 질문이 주어진다. 학생들은 이 중 하나를 택해 네 시간 동안 주관식으로 답안을 써 내려간다. 이 시험을 만든 목적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 내는 것"이라고 한다. 


          영상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학교 밖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바칼로레아를 향한 그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어서 올해 나온 시험문제에 앞다퉈 저마다 답을 내놓는다. 정치인은 TV에 나와 자기 답안을 발표하고 학자와 시민들은 강당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인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집 안에서, 프랑스 곳곳에서" 사람들은 철학을 논한다. 


          어린 시절부터 긴 시간을 들여 깊게 사고하는 방식을 배우고, 어른이 되어서도 철학적 사고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프랑스인의 삶, 우리와는 분명 다르다. 교과서에 나온 누군가의 생각을 달달 외워 본 게 전부인 우리에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삶이란 말 그대로 먼 나라 이야기만 같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독서모임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 나는 이런 독서모임이 우리가 자처해서 치르는 바칼로레아 같다. 교육시스템은 우리 생각을 제한된 테두리 안에 가둬 놓았지만, 우리 스스로 박차고 나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 괜찮으니까 너의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해 봐. 틀려도 좋으니까 우리 함께 생가하는 힘을 길러 보자."


          나도 독서모임에 여러 차례 참여해 봤다. 3년간, 1년간 긴 호흡으로 활동한 적도 있고, 짧게 몇 번 참석한 게 고작인 모임도 있다. 처음 모임에 나갔을 때는 어찌나 어색하던지, 사람들과 둘러앉아 진지하게 대화해 본 경험이 거의 없던 터라 모든 것이 생소했다.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에 가슴은 얼마나 콩닥콩닥 뛰던지. 속으라만 해 오던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자 말이 뒤죽박죽 엉킨 적도 많았다. 내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독서모임에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도 말이하고 싶어서 속으로 '언제 말하지, 지금 말해도 되나' 안달하기도 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소 두서없더라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일상생활에선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진짜 내 생각을 진지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들 기뻐했다. 가득 채워진 채 오래도록 해소되지 못했던 자기표현 욕구가 독서모임이라는 멍석 위에서 시원하게 분출되는 것 같았다.


          생각의 부딪침. 독서모임의 가장 큰 묘미다. 물론 생각과 생각이 부싯돌처럼 타닥타닥 부딪치는 경험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울지 모른다. 골똘하게 생각한 뒤 내놓은 결론이 상대의 말 한마디에 허술한 의견으로 판명 나 버리면 꽤 속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곧 부딪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함을 알게 된다. 그간 얼마나 근거 없는 생각들을 신념처럼 떠받들어 왔는지는 깨닫는 순간, 생각하는 즐거움에 더욱 깊이 빠져든다.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같이 읽었다.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인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게서 잔인한 살인마의 모습을 찾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한나 아렌트는 단호히 말한다. 아이히만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그저 '우리처럼'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했던 사람일 뿐이라고.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책이 던진 이 질문,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은 죄인가?"에 관한 각자의 답안을 안고 우리는 토론했다. 우리 한 명, 한 명은 아이히만과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얼마나 같은 사람인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이히만과 더 많이 달라지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물었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용기를 얻기를, 사유의 끝에서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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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 拔萃讀 ]

요약 독서 목적에 따라 책의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읽는 방법.  

읽기 방법은 읽기 범위에 따라 '전부 읽기'와 '발췌 읽기'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발췌 읽기'는 독서 목적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읽는 방법을 가리킨다. 보고서를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에는 책의 내용을 모두 읽을 필요가 없으므로 보고서 내용에 필요한 부분만을 선택하여 읽는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독 [拔萃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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