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에 곰이라니(추정경)
엄마가 우리를 고통 속에 낳았듯
우리도 우리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태웅은 혼자만의 답을 찾았다. 254p
어느 날 전국에 있는 중학생들이 동물화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곰으로 변한 태웅은 완전 무장한 경찰대원들에게 이동 수감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엄마와 싸운 후 비둘기가 된 세희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자신을 찾는 엄마를 외면한다. 동물화로 같은 비둘기가 된 지훈을 만나 우정을 넘어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재회하게 된다. 썩은 고기만 먹는 하이에나가 된 상욱은 동물화가 되기 전 인간이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이에나 생활을 하게 된다. 키가 작아 외로웠던 서우는 기린이 되고, 돌아갈 집과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들개가 된 국영, 그리고 몽키와 라텔 등 다양한 동물로 변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추정경 작가의 '열다섯에 곰이라니'이다.
책 제목 '열다섯'이라는 숫자는 인생에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사춘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부모들 뿐만이 아니라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게 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준비도 없이 맞이하게 되는 신체의 변화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들이 동물화라는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게 한다.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마주하는 아이들에게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자신감을, 부모님들은 이런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인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헤쳐나가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지켜봐 주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말은 비둘기 무리 안에서 늘 외톨이였던 세희를 좀 더 씩씩하고 용감하게 만들었다. 다시 볼 가족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다른 비둘기들의 괴롭힘에 기죽지 않게 해 줬고, 따돌림에도 의연해지게 만들었다. 비둘기일지라도 여전히 엄마의 딸이라는 믿음은 세희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었다. 56
국영은 차에 얼비친 가지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개라는 건 똑같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저 개는 보살펴 줄 사람이 있는 집개이고, 자신은 돌아갈 집과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들개란 것이 달랐다. 170
한번 길에 들었으니 힘 떨어질 때까지 달려보겠지.
스님은 왜 아이들이 동물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거쳐야 하는 시기지 않나
그런데 동물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저렇게 변하는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렇게 크게 앓고 나면 남은 생에는 사람으로 잘 살아갈 걸세. 이 시기를 겪지 않으면 눌러둔 제 본능 때문에 언젠가 괴로워할 날이 있을 테고
왜 각기 다른 동물로 변할까요?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 따라 그 길이 생기는 거라네. 가장 많이 머문 곳에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이 그림자가 되고, 그 그림자가 동물이 된 걸세.
그럼 쟤도 걱정이네요.
놔두게. 다 필요한 시기일 테니. 173
자신보다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해 보였지만 라텔은 그 어떤 불의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영은 라텔을 만난 뒤에야 깨달았다. 자신은 늘 도망칠 이유를 찾는 데 선수였음을. 211
제각각의 동물화를 겪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함이다. 역설적으로 사람의 태에 어울리는 속마음을 키우도록 그런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