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이 요즘 들어 재미가 좀 없어지기 시작했다. 포핸드와 백핸드 그리고 커트 등 기본기를 배울 때에는 없었던 것이 내게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저 공을 내 탁구 러버에 맞춰주는 그런 똑딱이가 아니라, 이제 상대가 있고, 11점 3세트가 끝나면 승패가 갈리는 게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내가 계속 회피해왔던 것 중 하나이다. 내가 배웠던 기본기와 앞으로 배워야 할 기술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승패를 겨루기 위한 것이고, 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기겠다는 마음가짐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나의 첫 게임은 나보다 먼저 시작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탁구장에 아줌마는 없다. 언니와 누님만 있을 뿐)였다. 레슨을 시작한 지 6개월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설마 하는 마음이 꼬물거리고 올라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이런 마음이다. 그래도 레슨을 6개월 받았고, 운동 신경이 그리 없지 않으며, 그래서 레슨 진도도 빠른 편이고, 다들 나에게 엄청 많이 늘었다고 했잖아. 그래! 형편없이 져버리진 않을 거야 하는 마음.
하지만 게임에 들어간 나의 그런 야무진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3대 0 완패. 당황해서 표정관리가 되지 않고, 이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그냥 집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맙소사! 이를 어쩌지?
나는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상황을 늘 피해 다녔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이길 수도 있지만 이겼을 때보다 졌을 때 감당해야 할 패배감이 더 두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애를 써서 누구를 이기는 것보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질 것 같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 내 정당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맞다 나는 많이 비겁하게 살아왔다. 그래도 별문제 없이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은 이 비겁함마저 들어 먹지 않는다. 내 실력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늘어나기도, 혹은 줄어들기도 또는 정체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못난 모습까지 다 드러나버리는 이 상황을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방어기제이다. 나는 이 상황을 견디기 위해 상대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내 실력이 아니라 상대의 탓으로 내가 진 거라고 이유의 대상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의 이런 행동을 애써 숨기려고 노력하는데 에너지를 무척 많이 쏟고 있었다. 바보 같은 행동과 감정에 치우친 내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괴로워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 탁구를 시작하며 내가 얻고자 했던 것들 말이다. 레슨을 받고 운동을 하는 목적 그것은 눈에 보이는 승패의 횟수가 아니라-설령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일 지라도- 과정의 즐거움과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서 얻게 되는 교훈,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내 생활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지 않았는가.
배움에 있어 순위의 결과만 존재하고, 그것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인생은 너무 상막하고 재미없어진다. 더욱이 내가 추구하는 삶,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은 결코 이런 쪼잔한 삶은 아니지 않았는가. 나는 분명하고, 명확했던 탁구에 대한 나의 길을 잃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건강한 삶을 위해 앞으로 계속 노력하기로 했다. 레슨 시작하고 6개월 나는 다시 거울 앞에서 스윙 연습을 하며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자아성찰을 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귀띔을 해주었다.
우리는 탁구를 배우기에 앞서 쑥과 마늘의 시간을 보내며 인간이 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거라고. 정말 내가 어떤 인간인지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나 싶은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