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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un 14. 2022

22-01 마흔일곱의 시작은 이직

마흔일곱 1월에 이직을 마음먹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적어 보았어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직을 하고 싶은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죠. 그 이유는 너무 복합적이라서 저도 잘 정의 내리기 어려워요.


그렇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나네요? 그날은 이상하게 아침에 칼같이 눈이 번쩍 떠졌어요. 피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벼운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빵을 챙겨서 출근했죠.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정말 상쾌한 아침이었어요. 그리고 사무실에 몽키 비지엠을 틀어 놓고, 커피를 내려 빵과 함께 먹는데 너무 행복한 거죠. 아 이런 거 행복인가라고까지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아.. 내가 이렇게 행복한 이유가 뭐지?라고 떠올리다가 그 어떤 날이, 국장(사무실에는 저와 국장 단 둘이 근무하고 있었어요.)이 잘 사용하지 않던 휴가를 낸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평소에 내가 알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알게 되었고, 이직을 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 깨닫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일곱에 이직 결정은 남편과 엄마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도전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응원해주었고, 안정을 추구하는 친구들은 그 나이에 무슨 이직이냐는 극과 극의 조언을 해주었어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짜장면 or 짬뽕, 양념 or 후라이드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노트에 검빨파 볼펜을 가지고, 경우의 수 대로 장점과 단점을 이리저리 그려보고 머리를 쥐어짜 보았지만, 어차피 그런 거 다 의미 없는 일이죠. 그래요.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마음의 문제인 거지. 처음부터 저의 이직은 마음이 시켜서였으니까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어요. 저는 2급 정사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서이고, 이 자격증을 가지고 대학병원 의학도서관에서 약 17년을 근무했어요. 그리고 남편회사의 지방 이전으로 지방으로 내려오게 되어,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가 작은 학회에서 편집부장으로 해외 학술지 2종을 발행하는 업무를 5년째 이어가는 중이었어요. 어쨌든 이 경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봐야 했어요.


그리고 꼭 하고싶은 일은 아니지만,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은 있었죠. 저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아니라, 1개의 자격증이 더 남아 있었으니, 바로 교원자격증이었어요. 초, 중, 고등학교도서관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로 일할 수 있다는 말. 사실 대학 선배와 동기들이 이미 사서교사로, 또 기간제 사서교사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할 수 있는 일 +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른 것입니다. 서울/경기만큼 지방에는 자리가 많이 없는 게 걱정이기도 했고, 기간제 교사이다 보니 매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일이 녹록지 않을 거라는 각오가 필요했지만, 일단 제일 먼저 공지가 올라오는 곳에 시험 삼아 지원해 보기로 했습니다. 지원하자마자 면접일이 잡혔고, 면접은 제가 생각해도 너무 민망할 정도였는데, 덜컥 합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수없이 많은 고민의 밤낮을 보내고 난 후, 결국 저는 이렇게 다시 사서가 되었습니다. 5년 7개월 만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사서가 아니라 사서교사입니다.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학교생활이 교사로서 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이렇게 저렇게 배워가며 이제 4개월 차입니다. 이번 주는 아이들이 모두 현장체험학습을 갔어요. 학교도 도서관도 모두 조용하고, 밖에는 비가 옵니다. 비 오는데 부산으로, 제주도로 간 아이들이 무사히 잘 도착했는지 걱정되네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학교도서관 생활을 조금씩 기록해볼까 해서 문을 열었습니다.

재미가 있어도 재미가 없어도, 보는 사람이 있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나의 하나밖에 없는 마흔일곱의 기록이니까 한 번 시작해볼까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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