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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un 21. 2022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달랠 수 있습니다

금정연 외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 


표제/저자사항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 : 나를 정성스럽게 돌보고 대접하는 힘 / 금정연, 모호연, 송지현, 신예희, 윤덕원, 이랑, 임진아, 정용준, 홍상지 지음

발행사항            서울 : 곰곰 : 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1

형태사항            157 p. : 천연색삽화 ; 20 cm총서사항(곰곰 ; 07)

주기사항            윤덕원은 "덕원"의 본명임 곰곰은 휴머니스트출판그룹의 청소년 교양문고임

표준번호            ISBN 9791160806557 43810: ₩13000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법-> 818

주제명               생활글[生活--]    수기(글)[手記] 언어Korean




다행인 건 청소의 끝은 대부분 '해피엔딩'이라는 거다. 청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반질반질한 마룻바닥과 맑은 수조 속 거북이들을 보면 기분 좋은 나른함이 찾아온다. 056


얼마 전 싸이월드가 열렸다. 2000년 싸이월드에 가입하고 미니룸을 꾸밀 때 내 싸이월드의 타이틀은 미니멀리즘.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미니멀리즘을 꿈꿔왔던 사람이었다. 미니멀리스트가 이렇게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말이다. 그 이후로도 쭉 나는 미니멀한 인테리어와 가볍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삶을 구경할 수 있는 책들을 읽으며 내 삶을 미니멀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책만 쌓이고 나는 아직도 미니멀리스트는 되지 못했다.


미니멀에 관한 책을 읽고 나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 책 속에 있는 미니멀한 집의 소파는 다 하얀색인지, 그걸 보고 있노라면 우리 집에 있는 시커먼 소파와 옷장에 있는 옷, 쌓여있는 그릇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싹 버려야 할 것만 같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것도 버려야 하고, 저것도 버려야 하는데라며 중얼거리는 내게 남편은 한마디 했다. 다 버려도 좋은데 나만 버리지 마.라고.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고 난 다음, 다시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미니멀한 거실과 미니멀한 주방 등 미니멀에 관한 책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다 버려도 좋은데 나만 버리지 마.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주기적으로 나는 내 주변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하고, 우울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에너지가 바닥이 날 때쯤이면, 사람들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집에 휴식을 위해 가만히 누워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집어 든 이 책에 내가 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들의 집을 구경하고 내 삶을 불만으로 채웠는지 알게 되었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겠지만 나는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때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 낫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마음과 몸의 상처들.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던 관계들. 부러운 사람들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크고 작은 감정들. 그때마다 어떻게 했었나요? 해결책을 찾고 대단한 사람들의 대단한 도움을 받았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해결됐는지도 모른 채 그것들은 몇 번의 밤과 몇 번의 계절 속으로 햇빛에 눈이 녹아 사라지듯 없어졌을 거예요. 그동안 나는 불면을 겪었지만 잠들었고, 입맛이 없었지만 먹었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공부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이번에 겪는 문제들도 앞으로 겪게 될 문제들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잘 해결해 줄 겁니다. 그 순간에는 내게 답이 없는 것 같지만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을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나는 강하고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달랠 수 있습니다. 022


집에 있는 소파를 버리고, 그릇을 새것으로 바꾸고,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내 삶이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집을 가꾸고 고칠 수 있는 살림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살림력이 있는 살리미스트였어!


살리미스트의 능력이 없다면 길러야지!라는 생각으로 하나씩 실행에 옮겨보았다. 그제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두부와 감자와 호박을 넣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먹어보았다. 나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일에 일단은 먹는 것이 최고니까. 그리고 어제는 화장대를 정리했고, 신발장을 정리했다. 너무 오래되어서 더 이상 사용할 것 같지 않은 화장품, 더 이상 신지 않을 것 같은 신발을 버렸다. 아쉬운 마음도 같이 버리며 나의 살림력을 기르는 중이다.


이렇게 나는 가장 오래 쓰일 나를 돌보는 일에 힘을 내어 볼 것이다. 삶이 너무 피곤해서 좀 흐트러지더라도 다시 시작해볼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힘을 길러보기로 했다.


일상이 망가져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해서 일상이 망가지는 것이다.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고, 작은 행동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건 작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세탁기를 포함한 어떤 기계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삶을 살며 우리는 일상을 반복한다. 다시 말하면 반복하는 일상이 우리를 살제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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