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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30. 2021

<여름날 우리> 너라는 발단,우리라는 전개,나라는 결말

이 영화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모조리 영상으로 실어놓은 것과 같다. 대체 그 말을 누가, 어디서 퍼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그 말에 공감했다. 누군가는 그저 혼자 품은 짝사랑이어서, 누군가는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 놓쳐버린 사랑이라서. 영화 <여름날 우리>는 보석같이 빛나던 우리의 이야기가 현실에 매몰된 나와 너의 이야기가 돼버린 과정을 그린다. 그렇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 따위로 애써 우리의 이야기가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이었음을 회피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유일했던 그 청춘을 복기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던 체육교사 저우 샤오치(허광한)는 교무실로 돌아와 자신의 책상에 놓아진 한 청첩장을 발견한다. 청첩장의 발신인은 자신의 첫사랑인 요우 용츠(장약남). 학창시절부터 20대에 걸쳐 이르기까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그녀의 청첩장을 보며 그는 그 둘의 추억을 복기한다. 한 때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그리고 모든 것을 내줄 수 있었던 그녀를.


영화 <여름날 우리>는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너의 결혼식>의 중국 리메이크작이다. 상견니로 수많은 상친넘을 양산하며 사랑에 미친 순정파 역을 누구보다 잘 이행한 허광한과, 수수하고 청순한 외모에 똑 부러지는 성격이 어울렸던 장약남의 극 중 케미스트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원작을 뛰어넘은 리메이크작이라 평해볼 수 있는 이유는 이 두 주연배우들의 외적인 케미스트리도 한몫하는데, 박보영배우의 연기력을 열외하고 똑 부러지고 당차지만 청순한 그 첫사랑의 이미지가 장약남배우에게 좀 더 맞아 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에서 두 주연배우의 키 차이가 박보영배우의 작고 소중한 매력과 김영광배우의 원숙미를 좀 더 돋보였다고나 할까. 더불어 남자주인공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걸림돌이 한국과 다르게 선수생활 자체로 변경된 것이 극의 흐름에 있어 더욱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국에서의 임용고시 실기는 사실 여자친구만을 탓하기에는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너의 결혼식>이 좀 더 남성관객들이 공감할만한 영화라면, <여름날 우리>는 여성관객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름날 우리> 속 허광한은 상견니의 리쯔웨이가 보인 순정파의 매력을 그대로 놓치지 않는다. 몹시 결이 비슷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상견니>와 <여름날 우리> 속 허광한은 다르다. <상견니>에서는 그저 사랑에 돌진하는 좀 더 판타지적인 남자주인공이었다면 <여름날 우리>는 결국 보통 남자와 다를 바 없어진 연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사실 극 중 저우 샤오치처럼 누군가 나에게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주기란 쉽지 않으나 모든 연애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나.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여겼던 나의 연인이, 그리고 우리의 관계가 사실은 그저 그런 보통의 연애 중 하나였음을 깨달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은 때때로 빛을 잃는다. 그렇게 사랑이 퇴색하고 변화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관계의 종말을 맞는다. 너라는 발단으로 시작한 영화는 우리라는 전개를 거치다 나라는 결말로 엔딩을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열렬히 사랑했던 이들은 함께했던 전개에 기대어 이별을 맞는다. 어떤 사랑은 폭풍 같아 폐허만 남기지만, 어떤 사랑은 잔잔한 송풍과도 같아 머물고 난 자리엔 고요함을 남긴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이 불었음을 감사해하는 어른이 된다.


문득 이런 류의 영화를 보고 떠오를 사람이 없는 이들이 퍽 부러워졌다. 인생에서 그렇게 사랑에 쏟을 에너지가 정해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어쩌면 그 에너지를 나는 모두 써버려 지금 이런 영화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이제는 그렇게 사랑할 용기가 없는 그저 그런 서른에 도래하고 말았지만 때때로 나는 다음 사랑 역시 첫사랑 같기를 고대한다. 비록 권태와 현실에 매몰될 지어도, 서로 사랑한 것에 후회가 없는 이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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