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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31. 2021

<중경삼림> 내 기억의 유통기한이 만년이기를

여기 삐삐 음성메세지 비밀번호가 '만년 동안 사랑해'인 남자가 있다.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하여 골몰하고, 전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기념하며 얼마 남지 않는 통조림을 먹어치운다. 여기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전 여자친구의 흔적이 집안 곳곳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그는 물건들에 자신인 양 말을 건넨다. 이제 갓 빨래를 마쳐 물이 흥건한 수건은 그만 울라며 말하고, 전 여자친구의 옷이 옷장에서 곰팡이가 스린 것을 보자 햇볕을 좀 쐬어야겠다며 옷을 널어놓는다. 마치 우울한 자신도 함께 햇볕에 마르기를 바라며.

영화 <중경삼림>은 나처럼 본인 스스로 영화를 꽤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숙제와도 같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고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지적허영심이 묘하게 채워진다고나 할까. 이를 반증하듯 SNS에서는 중경삼림의 일부 장면들이 편집되어 감성적인 글들과 함께 올라오고는 한다. 뚜렷한 갈등구조가 없는 다소 평이한 줄거리와 휘황찬란한 카메라 무빙 그리고 정신없는 홍콩의 좁은 건물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세포였을리 다분한 이들마저도 한번 즈음 찾아보게 만드는 것일까.


<중경삼림>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24살에서 25살로 넘어가는 한 청년이 묘한 분위기의 여성과 하룻밤을 그저 '밤'만 보내게 되는 이야기와 재기발랄한 로맨틱코미디처럼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 한 여자와 그 남자의 이야기. 앞선 첫 번째 이야기에서 가짜 금발머리가 몹시 잘 어울리는 임청하는 시종 바바리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내리지 않은 채 등장한다. 그런 여자에게 마음을 뺏긴 남자가 그 여자의 생일축하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 홍콩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해 된다. 오랜 영국 식민지었던 홍콩의 반환을 앞두고 느꼈을 국민들의 불안함을, 감독은 기억이 통조림같이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는 말로 위로하고 싶던 것일까. 굳이 홍콩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 할지어도 우리는 으레 25살이 되면 반오십이라면서 헛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청춘의 반대말은 노화가 아닌, 지금을 붙잡아두려는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양조위는 여자친구와 이제 막 헤어진 경찰 633으로 등장한다. 양조위를 '화양연화' 또는 '색, 계'로 먼저 접한 이들이라면 그의 청춘을 지금이라도 볼 수 있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 일일지 모른다. 그를 짝사랑하는 단골점원 페이는 그의 여자친구가 맡겨둔 열쇠로 그의 집을 몰래 들어가 마치 우렁각시처럼 그의 집을 가꾼다. 그런 무단침입자를 몹시도 사랑스럽게 그린 왕페이를 보자면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띈다. 그 둘이 등장하는 배경이라고는 고작 633의 낡은 아파트와 둘이 부딪히는 정신없는 시장, 그리고 페이가 일하는 좁은 가게일 뿐이지만 그곳은 남루해 보이지 않는다. 남루해 보이는 것을 남루해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어쩌면 청춘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중경삼림>은 홍콩 반환을 앞둔 젊은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잘 표현한 영화라 한다. 홍콩 반환이라는 중차대적인 도시의 역사가 당대 젊은이들을 압도하는 것이겠지만 젊은이란 언제나 그렇게 불안하면서도 희망찬 것. 때때로 앞이 막막하여 보이지 않다 하더라도 그 막막한 앞을 헤쳐나갈 시간이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오역이 로맨틱하게 들리면서도, 기억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원 대사가 그대로 살려지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더불어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그 어느즈음에 태어나 삐삐를 아는 내 나이에 감사해진다. 그래야 이 영화를 판타지가 아닌, 향수로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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