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 유 Aug 24. 2021

<어쩌다 로맨스> 그저 그런 싱글들을 위하여

'이런 영화에도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단 말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뻔한 영화들이 끌릴 때가 있다. 익숙한 클리셰로 점철된 내용들과 배우들의 이미지와 연기에 기대는 그런 킬링타임용 영화를. 머리 아픈 현실에서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그런 영화들을 찾아보곤 한다. 다음날 출근이 몹시도 싫은 주말 저녁 혼자만의 공간에서 간단한 요깃거리와 맥주 한 캔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소확행을 안겨다 주는 그런 영화가, 때때로 몹시도 고프다.


건축가 나탈리(레벨 윌슨)는 로맨스영화 속 여주인공을 꿈꾸던 소녀 중 하나였지만, 그런 영화들은 모두 다 허상에 불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싱글여성이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한 사고로 로맨틱코미디 세상 속으로 떨어지게 되고, 그녀는 영화 속 여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냄새나는 그녀의 강아지는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며 현실에선 나를 일적으로도 무시하던 핫한 클라이언트는 나의 연인이 된다. 평생 돈을 벌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집과,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등장하는 게이 절친까지. 그러나 그녀는 이 말도 안 되는 허구의 세상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그녀 본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녀가 영화처럼 진실한 사랑을 찾으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있는 걸까.

영화 <어쩌다 로맨스>는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를 하나부터 열까지 대놓고 따라감과 동시에, <마법에 걸린 사랑>과 같은 내용의 구조를 취한다. 이상한 세계에 빨려 들어간 여주인공이 겪는 좌충우돌에서 그 이상한 세계가 '로맨틱코미디'라는 것은 충분한 웃음코드로 작용한다. 로맨틱코미디를 꽤나 보았던 관객들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각종 클리셰들이 공감되면서도, 정말이지 '머리를 비우고' 볼 수 있는 킬링타임엔 이만한 영화도 없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특히나 마법 같은 사랑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도 남은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영화들만이 줄 수 있는 재미들을 느껴보고 싶다면 더할 나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로맨틱코미디를 보면서 설레고 싶지는 않은데 또 로맨틱코미디는 보고 싶은 관객들에게 필요한 영화랄까. 평범하디 평범한 여성을 보면 덩달아 동질감이 생기지만 <브리짓존스>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멋있고 잘생긴 만인의 연인 콜린 퍼스는 영화 속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조연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켰던 그녀의 친구가 사실은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내용마저 로맨스영화답지만 그마저는 용납하고 싶다. 그마저도 없는 영화는 현실처럼 쓸쓸하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단점은 앞서 서술한 영화의 장점과 그 궤를 같이한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에서는 주인공의 심적 변화가 차츰히 쌓아 올려지다 마침내 클라이막스에 터져버리는 것과도 같다면 <어쩌다 로맨스>는 다소 허무맹랑하게 주제의식을 툭하니 던져버린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주제의식은 이 영화가 애초에 여주인공으로 레벨 윌슨을 선택했을 때부터 알 수 있는 것이었으나 영화는 그 메시지를 성의 없이 던진다. <아이 필 프리티>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외형은 사실 그대로였으나 마음가짐이 바뀌었음을 깨닫는 것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장치였으므로 그 장치가 깨지며 주인공이 각성하는 것이 물 흐르듯 보였지만 <어쩌다 로맨스>는 그러한 과정이 없다. 영화 속에서 부여한 장치는 '로맨틱코미디의 세계에 빠진 주인공'이었으므로, 되려 그 세계가 허상이었고 그 허상을 본인 스스로 걸어 나오려는 <트루먼 쇼>의 흐름이 더욱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영화가 주제의식을 다루는 시퀀스를 조금 더 촘촘하고 성의 있게 구성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어쩌다 로맨스>는 사랑스럽다. 영화의 크나큰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역할과 기능을 생각해 본다면 제 몫은 충분히 해낸 것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 나를 제외하고 모두 다 제 짝이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몰려올 때,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으나 되려 내가 좋아하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고만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어쩌다 로맨스>는 회색 도시를 사는 그저 그런 싱글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던진다. 경쾌한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나면, 울적한 마음도 다소 희석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정말로 기분이 나아졌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울> 보통의 미지근한 인생들을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