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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07. 2021

<소울> 보통의 미지근한 인생들을 위하여

한때 김난도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제목에 젊은이들은 꽤나 위로를 받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많은 청춘들은 저자에게 반문하기 시작했다. '꼭 아파야지만 청춘인가요?'라고. 작가이자 방송인인 유병재는 당시 본인의 SNS에 '아프면 환자다'라는 말을 적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청춘들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다가도 금세 자기계발서가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가 하면 '미라클모닝' 등 갖가지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들을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밥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되느냐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저마다 본캐와 부캐를 나누며 못다한 꿈들을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그중에는 본업과 재능이 일치하여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람도 있었다. SNS와 유튜브를 통하여 우리는 세상에 재능과 열정 혹은 꿈을 가진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그 들의 행보에 나 같은 사람은 영감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미지근한 채로 살아가면 안되는 걸까?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는 뉴욕에서 음악교사로 생활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곤 있지만, 언젠간 재즈뮤지션으로 데뷔하기를 꿈꾸는 직장인이다. 우연한 기회로 자신이 꿈꾸던 밴드의 일원이 되어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영혼이 되어 '저세상'으로 떨어지게 된다. 순리대로라면 망자가 된 영혼들과 함께 저세상으로 건너갔어야 하는 그이지만, 그는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며 고전하다 다른 차원으로 추락하게 되고 그렇게 '태어나기 전의 세상'으로 떨어진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갖춰야 할 속성들이 모두 갖춰지면 지구통행증을 발급받게 되는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 그러나 불꽃이라 불리는 관심사가 결여된 채 지구로 가고 싶지 않은 시니컬한 영혼 '22'. 지구통행증이 필요한 조는 '22'의 통행증을 받기 위하여 그에게 관심사가 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주려 노력하다 실패하게 되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해주는 문윈드를 우연히 만나 코마상태인 자신의 육체를 발견하게 된 조는 '22'와 함께 지구로 추락하고 만다. 눈을 떠보니 조의 몸에는 '22'가, 조의 영혼은 함께 있던 고양이에게 들어간 상황. 조는 다시 자신의 육체를 되찾고 원하던 재즈뮤지션으로서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하여 '22'를 이끌고 고군분투한다.


영화 <소울>은 아이와 함께 보러 갔다가 부모님이 울게 되는 애니메이션보다 조금 더 앞서서,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호칭이 더욱 어울리는 작품이다. 사랑 또는 용기 등 1차원적인 인간의 감정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영화 <소울>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하여 위로를 던진다. 이러한 주제의식 때문에 누군가는 생각보다 재미가 덜한 영화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삶의 공백을 사유하게 해주는 차 한 잔과도 같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유튜버 이승국은 이 영화를 보기 전 본인이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들은 '는 이미 겪었잖아'라는 말을 하고싶을지도 모르겠다는 평을 남긴 바 있다. 그의 말은 들어맞았고, 나는 이미 그러한 시기를 지나 이 영화가 주는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영화를 본 후에야 알았다.


조가 우여곡절 끝에 '22'를 저버리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원하던 밴드와 함께 최고의 공연을 마쳤으나 그의 삶은 아쉽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몇 년 전 배낭여행을 떠나던 나를 두고 친구 A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행을 다녀와도 나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이제 끝인지 묻는 조에게 밴드의 리더인 도로시아는 한 이솝우화를 들며 말했다. 어린물고기의 바다가 어딨냐는 질문에 여기가 바다라고 답하는 어른물고기, 그리고 이 곳은 그저 물일 뿐이지 내가 원하는 바다가 아니라는 어린물고기의 대답. 그녀의 말에 상실감을 느낀 조는 집으로 돌아와 '22'가 자신의 몸이었을 때 모았던 물건들을 보다 이내 연주를 시작한다. 자신의 사소하고도 행복했던 일상들을 떠올리며 피아노를 연주하다 그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시퀀스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떤 통증은 애써 꼬집지 않아도 불현듯 아파올 때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의 결말은 다행스럽게도 디즈니식으로 아름답게 끝을 맺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 회색빛도시에 살아남은 애니메이션회사들에게 내려진 하나의 숙업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줄곧 유명한 작가가 되기를 꿈꿔왔던 것 같다. 그것 말고도 조금 더 잘 살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처한 현실에서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골몰하다 다른 이의 인생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몰아세웠던 적도 더러 있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일생일대의 작품을 남기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듯이, 나 역시 지금의 나여도 괜찮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보통의 기억되지 못하는 다른 미지근한 인생들에게도, 그 일상의 사소한 행복에 설레이곤 했던 나의 모든 시간들에게도. 나에게 배낭여행을 다녀와도 내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친구 A는 그 이후로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그녀의 인생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순례자로 살며 맛보았던 크루아상과 라떼 한 잔을 그녀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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