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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n 18. 2021

<프렌즈> 영어공부용인줄 알았던 한탄스러운 세월을 위해

누구나 영어공부하면 한번 즈음 들어보았을 작품이 있다. 우리나라 시트콤에도 꽤 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이자 방탄의 리더인 RM의 영어실력을 키워낸 시트콤. 영어공부용이라고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 대중매체에 한 획을 그은 굵직한 작품이자, 10년이 넘은 세월에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프렌즈>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은 어쩌면 영어회화라는 목적에 갇혀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 많은 이들과, 나처럼 친구가 아무리 프렌즈가 재밌다고 말을 해보아도 그거 영어공부용이지 않냐며 대수롭게 넘겼을 이들을 위하여 쓰여졌다. 어찌 된 일인지 교육용 시트콤이라는 이름에 갇혀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른이들을 위한 농담들을 상상하지 못했을 사람들에게. 챈들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누구인지 모를 이들에게. 제니퍼 애니스톤이 브래드 피트의 전부인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아메리칸 스윗하트'라 불릴 정도로 사랑스러운 레이첼을 연기한 배우임을 모르는, 기타 등등의 다양한 이유들로 아직 <프렌즈>를 입문하지 못한 많은 이들을 위해.

한때 '남자셋 여자셋'이나, '논스톱'을 즐겨본 세대라면 친구들이 함께 모여사는 로망에 대해 한번 즈음은 꿈꿔보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관계디톡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대인관계의 폭을 줄이고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현상이 보이고 있지만 라떼에는, 그러니까 '논스톱'을 보며 대학생활의 환상을 키워가던 세대에는 복닥복닥 모여사는 재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프렌즈>에서 등장하는 여섯 명의 친구들은 때때로 서로의 연인이었다가 룸메이트였다가 대체로는 가족이기도 하다. 이렇게도 남과 가족같이 살아질 수 있구나라는 것을 나는 시드니로 워홀을 떠나며 알았다. 독립된 성인들이 집세절감을 위해 같이 사는 것이 일반적인 뉴욕도 시드니의 배경과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이러한 부분이 우리나라에서 프렌즈가 영어공부용 시트콤으로 전략해버린 이유이자, 쉽게 스타트를 끊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프렌즈>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되었다고 무방할 <남자셋 여자셋>의 배경엔 하숙집이라는 로컬라이징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나처럼 대도시에서 하숙이던 쉐어하우스던, 남과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 시트콤에 크게 동감할 수 없는 걸까. 혹여 누군가 그러한 이유로 이 작품의 시청을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필히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고쳐 말해주면 좋겠다. 상대적으로 서부컬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나역시도 무리없이 즐길만큼 프렌즈는 보편적인 웃음코드를 담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등장하는 카메오에 방청객들이 환호를 지를 때 나는 대체로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든지 미국인들만 아는 농담이 대사로 나올 때라든지 등등(일례로 영화 '조커'의 그 유명한 knock knock 농담이 프렌즈에서도 등장한 적도 있었다.) 간혹 미국문화에 이해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되려 아 사람 사는 것은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여기나 아주 크게 다를 바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더불어 프렌즈를 보다 보면 작품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문점을 자아내는 때가 더러 존재했다. 당당하게 브라리스인 상태로 출연하는 여배우들에 내가 어느덧 익숙해진 것을 발견할 때라든지, 90년대 시트콤에서 페미니즘 도서를 나눠읽는 여성캐릭터들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그 시대에 그것이 가당키나 했을지, 모든 커플들의 결말이 반드시 결혼만은 아니라는 결말이 왜 이토록 와닿는 것인지 등. <프렌즈>역시 인종차별이라던지 성소수자를 희화화하는 것에 완벽히 피해 갈 수 없는 작품이라는 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년이나 더 된 작품에서 등장하는 내용들을 왜 우리는 이제야 논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소소하면서도 결코 지나치기 힘든 의문들을 <프렌즈>를 보며 들 때마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해 저절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지점은 이 작품의 번외이자, 개개인의 차이에 따라 다르겠다만 어찌 되었건 그만큼 이 작품은 시대를 앞서갔고(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본다면), 20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 세계에서 넷플릭스 재생순위 상위링크에 있을 만큼 세련됐다. 서문이 길었으나 결론은 지금 입문해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똑똑한 작가 여러 명이 붙어 만들어낸 챈들러의 농담들은 분명 남이 하면 비꼬며 재수 없을지 몰라도, 그가 하면 위트있다. 시즌 1의 1화부터 마지막시즌의 마지막화까지 모두 챙겨보다 보면, 어느새 이들은 나의 또 다른 친구 같기도 하다. 사랑에 어리숙하던 챈들러가 모니카와 만나 서로에게 청혼하는 장면부터 비주류의 삶을 살던 피비가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오른 다든지, 아빠찬스로 살던 레이첼이 스스로 성장하여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모습까지.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캐릭터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성장이 꼭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더불어 최근 인터뷰 등을 통해 어느새 이미 중년이 된 배우들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극 중 캐릭터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갔던 것 같기도 한 오묘한 감정. 세월이 주는 먹먹함은 더불어 따라온다.


<프렌즈>는 극 중 캐릭터들이 각자가 한 번씩 살아보기도 하며 매일같이 모였던 모니카의 집을 떠나며, 역시나 매일같이 모였던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하자는 말로 막을 내린다. 마치 청춘이 늘 내 인생에 붙들려 있을 수만은 없듯이, 그러나 떠오르기만 해도 찬란한 시절들을 우리 함께 고고하게 보내주자고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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