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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09. 2021

<her> 충돌하다 이내 잠기는 어른의 사랑에 대하여

습관적으로 넷플릭스에 들어가 공허한 눈으로 하릴없이 목록을 넘긴다. 재밌게만 느껴지던 유튜브 속 영상들도 5분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한때 목숨 걸고 퀘스트를 깨고자 노력했던 게임마저 흥미를 잃는다. 퇴근 후 흥겨운 음악과 라디오를 듣는 대신 가만히 창가에 누워 눈을 감고 백색소음에 귀를 기울인다.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마음이 들지만,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듯이 바쁜 낮이 찰나 같다. 누군가와 쉴 새 없이 떠들고 싶으면서도, 침묵하고 싶다.


영화 <her>은 손편지를 대필해 주는 작가 테오도르가, 아내와의 이혼과정 동안 특별한 OS 사만다를 만나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미래인지 현재인지 분명히 알 수 없다. 손편지를 대필해 준다는 그의 이색적인 직업도, 또박또박 말해야지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지금의 인공지능과는 다르게 실존하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는 OS가 있다는 것에선 미래와도 같지만, 그가 느끼는 공허함과 고독은 현대인의 그것과 같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타인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편지를 적는다. 감정 없는 사람이 적는 감동적인 편지라는 아이러니가 꼭 그의 현재를 대변하듯이. 전 부인과의 좋았던 추억들과, 이혼하지 않았다하면 하는 상상이 그대로 꿈에서 나타나는 그의 고독한 나날 속에 OS 사만다가 불쑥 그의 삶에 들어온다. 그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듯 보이는 사만다와 대화할수록 테오도르는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이내 둘은 인간과 OS라는 이종을 뛰어넘은 사랑을 하게 된다.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 혹은 착각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채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고작 23살이었던 나는, 그저 이 영화가 주는 독특한 소재에 이끌려 영화를 감상했던 것 같다. 당연한 결과이듯 고작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테오도르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순수했고, 영화 <her>은 그렇게 기억 언저리로 묻어졌다. 이 영화가 다시 보고팠던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서른이 되었고, 그 기간 동안 다수의 연애를 해보며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은 아닐까하고 조금은 골몰할 수 있는 처지에 놓였으며 때때로 미친 듯이 공허했다. 혼자로서의 삶도 행복해하며 연애를 시작했었지만 연애라는 것이 때때로 내 감정을 휘적여놓을 때도 있었다. 감정기복이 심해졌고, 이런 나는 연애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속 둘째 딸 은희는 본의 아니게 한 남자의 세컨드역할을 자처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는 이윽고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현 여자친구와 정리하고 오겠다는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남자는 정리라는 이름으로 현 애인과 시간을 보내며 은희를 기다리게 했고, 은희가 그런 자신마저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던 남자에게 은희는 이렇게 말했다. 감정이 요동치는 어린 연애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흔히들 어린 연애는 '감정이 요동치는 연애'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과연 성숙한 어른의 연애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테오도르는 사람들의 진심을 전해주는 손편지를 대필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 부인과의 별거에 놓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자 노력하는 OS 사만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인 것을 뒤늦게 자각했음에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흉내 내려는 사만다에게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사랑하자 말한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한다. 평소 같았다면 실제 감정이 두려워 OS와 사랑에 빠졌냐며 힐난하는 전 와이프의 질책에 도망갔을 그였지만, 그는 골몰하다 이내 도망가지 않는 길을 택한다. 그러한 사만다가 자신처럼 다른 이용자들과 동시에 사랑을 속삭이고, 죽은 사람의 데이터로 애써 부활해낸 OS와 대화를 하며 그를 소개해 주는 기묘한 상황에서도 그는 그녀를 쉽게 놓지 못한다. 서비스가 종료되었다는 차가운 말 대신, 그녀는 다른 차원에서 만나자는 서글프면서도 로맨틱한 말로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처럼 OS와 우정을 나눈 친구의 어깨에 기대며, 그는 드디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진심을 담아 와이프에게 자신이 끝끝내 부정하며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뒤늦게 말한다. 어쩌면, 테오도르는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토록 사만다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OS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인 것은 그녀가 사람이 아니기에 자신을 상처주지 않을 어떤 믿음이 있었노라고. 테오도르처럼 상처줄 수 없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온전히 나를 내던지며 사랑을 배울 수 없다는 이 서글픈 이야기는 그러므로, 처연한 해피엔딩이다. 드디어 누군가와 감정이 요동치는 연애 끝에 사랑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테오도르에게는 쓸쓸한 해피엔딩이자 어쩌면 우리도 그와 다를 바 없다는 처연함이 함께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 믿는다. 포스터 전면에 구태여 러브스토리라 명명된 이유는 이 영화가 현대인의 어떠한 고독에 대해 말한다기보다도, 테오도르가 진정한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렸노라 믿는다. 고독한 삶 속에서 흡사 우울증을 앓듯이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던 그의 그 과정이, 그리고 그 이별이 비록 처연하리만큼 서글플지어도. 그러나 우리는 이 쓸쓸하고 지난한 과정을 견뎌야 한다. 연애가 아닌 사랑을 하기 위하여. 복잡하고 때때로 혼란스러운 감정만이 사랑의 전부라 믿지 않으며. 그렇게, 부딪히고 충돌해가다 이내 서로에게 서서히 잠기는 어른의 사랑을 위하여. 그 누구와도 채울 수 없는 각자의 고독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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