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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14. 2021

<상견니> 황위시안을 보다가, 천원루가 보이는 너에게

상견니 대만판 13회(극장상영)를 보고

함께 상친놈이라 자부하는 친구와 함께 상견니의 대만판 마지막 회를 관람했다. 이미 드라마 전 편을 정주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울지 않을 거라 자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느 장면에서 울어버렸다. 친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줄곧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며, 상영관에서 나오자 왜 그렇게 많이 울었냐고 물었다.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황위시안과 리쯔웨가 아닌, 천원루에 감정이 이입되어 생각보다 많이 울었노라고 답했다.


마지막 회인 13화는 사실 황위시안이 아닌 천원루를 위한 회차에 더욱 가깝다. 이야기를 이끄는 비중도 물론이거니와, 천원루가 사실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었음이 그려지는 장면까지. 황위시안은 결국 천원루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미안함에 눈물을 흘린다. 그녀에게 있어 천원루의 삶은 자신의 연인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울과 고독을 친구로 삼는 불안정한 10대 소녀가 있었다. 황위시안에게 있어 그녀의 삶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그녀가 천원루의 삶을 관여할수록 천원루는 자신이 볼품 없는 존재라는 것을 더더욱 실감하고 말았다. 그녀는 황위시안 덕에 꽤 괜찮은 삶을 살아지게 될 것으로 보였으나, 실은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상기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왜 나는 더 이상 노력할 수없는데 나보고 노력하라고만 하는 거야'라 천원루가 외치는 그 장면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싶은 날에는 93번버스에 올라 종점까지 찍고 다시 집에 오는 것을 반복했던 10대의 내가 떠올랐다. 간절히 사랑받고 싶었으나, 혼자 있는 것이 편했고 또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다시금 군중 속에 들어가려 애쓰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너도 괜찮아'라는 말을 끝끝내 스스로 하지 못해서 억지로 내 모습을 꾸며내는 것을 택했던 내가. 모두가 우울한 생각은 하지 말도록 노력하라고 할 때, 조금 더 단순한 내가 되어보라고 할 때 '이게 나야'라고 말할 수 없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천원루가 리쯔웨이를 좋아한 것은 단순히 어린 날의 풋사랑 같은 감정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그 아이 옆에 있으면 나 역시 함께 밝아질 것만 같은 그 마음이 시작이었을 거라고. 누구보다도 밝은 에너지를 뽐내는 그의 미소가 유난히 햇살 같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라고. 어쩌면 그녀는 다른 이를 통해 얻어진 다른 색의 삶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 삶의 명도가 조금은 밝아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그녀의 삶을 애틋해했다.


드라마 <상견니>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두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황위시안을 보다가 어느덧 천원루가 보였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불안전한 청소년기를 한 번씩 겪어본 이라면 천원루와 모쥔제의 이야기에도 꽤 많은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이 세상의 조연이 아님을 누구보다 깨달았던 이라면, 황위시안과 리쯔웨이의 가슴 아픈 사랑만큼 천원루의 시점으로 해사하게 웃던 리쯔웨이의 미소가 더욱 아련히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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