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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18. 2021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용과 드래곤을 구분한 마블

그리고 사랑에 미친 빌런과 그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나와 같은 마블의 진성팬들 중 일부는 <블랙 위도우> 이후 마블을 대하는 열정이 조금은 사그려졌을지도 모른다. 마블에서 기존 히어로에 대한 예우로 <블랙 위도우>를 선보였지만 되려 이 영화는 일부 팬들에게 원성을 다. 심지어 블랙 위도우는 어벤져스 원년 멤버인데다가 <어벤져스:앤드게임>에서 이렇다 할 예우 없이 퇴장해버린 인물로, 팬들 역시 그의 솔로무비인 <블랙 위도우>를 꽤나 기다려왔다. 그러나 영화 <블랙 위도우>는 팬들이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캐릭터에 대한 마지막 작별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킴과 동시에 인물들이 전부 뒤바뀌는 다음 어벤져스 세대를 위한 하나의 사다리와도 같았다. 그러니 모든 팬들의 마음을 쉽게 충족할리가.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새로운 히어로를 등장시킨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개봉했다. 누군가는 마블이 이 영화 아시안들의 '블랙팬서'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냐, 최근 두드러진 반중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냐 하는 우려를 내비쳤다. 허나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은 그 우려들과는 무관하게 마블이 내놓은 첫 번째 가족영화이자 사랑영화로 보인다. 사랑에 미친 빌런과, 그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캘리포니아에서 호텔 발렛보이를 하며 살아가는 샹치는 사실 아이언 맨을 탄생시킨 계기를 제공했던 텐 링즈의 수장 웬우의 아들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철저히 아버지에 의해 킬러로 성장해온 그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도망치고자 홀로 미국으로 온 과거가 있다. 이러한 과거를 뒤로하고 절친한 친구 케이티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 그의 아버지는 그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위협을 가한다. 샹치가 집을 떠난 후 홀로 성장해온 여동생 샤링과 함께 결국 아버지에게 돌아온 그는, 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불러온 이유를 알게 된다. 어머니를 되살릴 수 있다는 아버지의 헛된 믿음과 그 믿음으로 부서질지 모르는 어머니의 세계를 그 들은 막을 수 있을까.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중국자본이 묻은 동북공정 영화라고 우려할 관객들에게 적어도 마블 영화는 기본은 한다는 대답을 안긴다. 이 영화는 다행히도 중국관객들을 위한 아부성 영화가 아닌, 홍콩영화를 보고 자라온 관객들에게 그 시절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액션 시퀀스에서 보이는 무술은 홍콩무협영화가 떠오르고, 샹치의 버스 액션신에서는 성룡의 영화가 보인다. 더불어 영화는 '텐로'라는 가상의 마을을 통하여, 서양의 판타지들이 그러하였듯이 동양의 크리쳐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연대의식이 강한 흑인들에게 '블랙팬서'가 그들의 우상이 되었으나 샹치는 아시아인들의 블랙팬서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지만, 동양인으로서는 사실 꽤 반가운 요소들이 몇 가지 보인다. 서양인들의 환상이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동양의 문화적인 요소들이 곡해 없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이 영화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선한 수호자는 뱀과 비슷한 형상의 동양의 '용'이 등장한 반면, '어둠의 드웰러'는 서양의 '드래곤'과 같이 도마뱀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가 마블의 D-war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 영화를 이 영화에 견주어 빗대는 것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만든 모든 이들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영화의 내용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가족영화이자 멜로 영화일 것이다. 주로 공동체의 악을 상대해오던 기존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샹치는 어찌 보면 순전히 외부세력이 개입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은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이 사단을 벌인 빌런 웬우는 양조위배우의 실제 러브스토리와 더불어 그 시너지를 더한다. 자신의 권력과 복수를 위하여 일을 벌였던 기존 빌런들과 다르게 그야말로 사랑에 미친 빌런은 어쩐지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또한 불안정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해오며 그런 아버지와 대립하게 된 아들과, 부모의 무관심으로 홀로 성장한 딸이 함께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은 그야말로 이 영화가 '가족영화'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MCU에서는 주로 '가족의 사랑'은 극의 갈등 및 완화를 위한 매개체로 그려진 경우가 더욱 많았으나 위 영화에서는 그것을 전면으로 내세워 전체적인 극의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더불어 극 중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며, 자신의 영어 이름을 주로 사용하는 케이티에게 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웬우'의 대사는 이 영화가 '블랙 팬서'와 그 궤를 같이 하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은 결말에 다다라서 등장한 최종보스에 의해 그 전개를 갑작스럽게 잃은 데다가 웬우의 허무한 퇴장이 다소 아쉽기만 하다. 또한 극의 평이한 전개는 기존 MCU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블팬들에게 있어 마블 영화란 언제나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 말미 쿠키영상에선 총 2개가 등장하는데 마지막에 등장한 쿠키영상 속 샤링의 모습은 적절한 페미니즘 메시지가 돋보인다. '캡틴 마블'에서는 그 메시지가 작품 전체를 잡아먹어버렸지만, 블랙 위도우부터 마블은 그 중도를 안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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