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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27. 2021

<브리짓존스의 일기>언니 이제 나도 곧 언니랑 동갑이야

대한민국이 삼순이 열풍을 불러일으켰을 때만 해도 나는 고작 여중생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하면 결코 좋은 애인이 아니었던 헌진헌(현빈)이 당시에는 누구보다 멋있어 보였고, 극 중 삼순이를 보며 노처녀의 이미지를 만들곤 하였다. 그런 그녀의 나이가 고작 서른 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도 그녀와 동갑이던 올해가 되고 나서였다. 나는 그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으나, 적어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삼순이는 노처녀가 아닌 그저 자신의 일에 당당하던 여성이라는 평을 새롭게 듣고 있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일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극 중 남자주인공의 성이 동명의 소설 속 남자주인공과 동일하며, 서로의 첫인상이 좋지 못한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역시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오만하다는 오해를 받았던 오만과 편견 속 엘리자베스와 다르게 브리짓 존스는 몹시 사랑스럽다는 정도. 앞서 삼순이의 이야기를 굳이 꺼낸 것은 <내 이름은 김삼순>이 위 영화의 플롯을 정확히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삼순이를 사랑하는 이라면, 브리짓 역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브리짓 존스는 런던 출판사에서 근무 중인 32살로, 생일날 홀로 초에 불을 붙이고 'All by my self'를 열창하며 자축하는 싱글여성이다. 그녀는 성탄 파티에서 루돌프가 그려진 어글리 니트를 입은 인권 변호사 마크 다아시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의 첫인상에서 좋지 못한 인상을 남긴 채 헤어진다. 그 후 브리짓은 바람둥이 직장상사 다니엘과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그와 마크의 과거를 전해 들은 그녀는 마크를 더욱 오해하고 만다. 자신의 애인 다니엘과 마크 사이에 있던 진실이 무엇지 알지 못한 채.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 브리짓은 사랑스럽지만 때때로 우스꽝스럽고 보는 이마저 공감성 수치를 불러일으킬만한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 그녀는 여타 다른 여자주인공들처럼 아름다운 몸매와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눈앞에서 좋은 남자를 놓치고 바람둥이에게 마음이 빼앗기기도 하며 자신의 감정을 뒤늦게 깨닫고 직진하지만 사랑을 쟁취하는 데에는 곧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니까 그녀는 여타 다른 '주인공들'보다는 조금은 나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내 옆사람 같기도 한 '주변인'에 가깝다. 물론 마크 다아시와 다니엘을 연기했던 콜린 퍼스와 휴 그랜트의 리즈시절을 보면 브리짓 존스가 영화 주인공임을 애써 부정하기 힘들지만.


그런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웃픈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영화는 그저 그런 로맨틱코미디가 아닌 하나의 동화로 자리 잡게 된다. 어린 시절 디즈니에서 보여주던 아름다운 공주가 늘 주인공이었던 그런 동화가 아닌, 잠자기 전 공상하게 되는 나의 꿈속 같은 동화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내가 안타깝던 이들이라면 그녀의 좌충우돌 러브스토리가 꽤 웃음이 나면서도 한 편으로는 짠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런 이유로 그 시절 언니들은 삼순이에게 열광하였나 보다.


우리는 누구나 삼순이이면서도, 브리짓이었을 것이다. 종종 인생은 내 맘대로 굴러가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심지어 흑역사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높은 계단을 애인과 함께 올라간 삼순이처럼, 추운 겨울 맨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뛰어가 안겼던 브리짓처럼 행복한 결말을 꿈꾼다. 언젠가 나에게도 긴 방황을 끝내고 사랑에 안착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당장 내 눈앞에 벌어지지 않는다 해도, 또는 영영 오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는 적어도 오늘의 우리를 사랑해야 한다. 이별 후에도 열심히 빵을 구웠던 삼순이처럼, 쉽게 주눅 들지는 않았던 브리짓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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