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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05. 2021

<섹스 앤 더 시티>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었다

결국 명품은 그녀들과 우리들

뒤늦게 미드에 입문한 사람들은 으레 그 작품이 가졌던 어떤 이미지와 소문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한국에 OTT서비스가 론칭되기 전, 이미 많은 수많은 이들은 미드를 접했고 당시 그런 기류에 관심이 없던 나는 유명 작품들에 대해 몇 가지 소문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가령 <프렌즈>는 영어공부에 그렇게 좋다느니, <프리즌 브레이크>에선 석호필이 등장한다느니, <섹스 앤 더 시티>는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 네 명이 나온다느니 하는. 이후 미드에 입문하고 나서 프렌즈를 시즌1의 1화부터 마지막 시즌 마지막화까지 모두 보고 나서야 어쩌면 그런 루머들은 해당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이 부풀려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꽤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앞서 <프렌즈>에 관한 글에서도 밝혀둔 바 있지만, 내가 들은 소문이 사실 다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었다고.

<섹스 앤 더 시티>는 제목 그대로 뉴욕'시티'에 사는 여성들의 '성'과 사랑 그리고 동시대 여성들이 품었으나 미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주제들을 과감 없이 말하는 드라마이다. 위 네 명은 모두 번듯한 직장이 있는 전문직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그 직업들이 각각의 캐릭터와 몹시 잘 어우러져 그들의 직업이 마치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시즌 1에서는 메인주인공인 칼럼니스트 캐리가 노트북을 켜고 칼럼 주제를 던지면 불특정 다수의 이들과 거리 인터뷰를 하듯이 진행되었지만 시즌2를 넘어가며 이 드라마는 그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시즌 1의 그 방식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다소 아쉬운 점이겠으나 오히려 제작진 측에서 네 명의 주인공에게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방안을 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에 밝힌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면, 내가 이 드라마에 가진 오해는 한 가지였다. 이 드라마에서는 쉴 새 없이 명품이 등장한다는 것.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미디어에서는 뉴욕에 사는 여성들의 과소비를 위 드라마가 부추겼다고 말한 것도 같다. 그러니까 한 때 여성혐오의 단어 중 하나였던 '된장녀'들의 이미지가 이 드라마에 있었노라고 가히 부끄럽게도 고백하는 바이다. 실제 위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명품의 가짓수는 쉴 새 없이 많겠으나, 이는 구두를 좋아하는 쇼핑광이라는 캐리의 설정에 한몫을 할 뿐 극의 주제와는 철저히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뉴욕에서 번듯한 자신의 아파트를 가진 전문직 여성들이 아닌가. 극 중 이들은 시즌 후반에 갈수록 본인들이 20대에 살았던 처참한 환경의 아파트를 떠올리며 자신들도 한 때엔 궁핍했던 이들이라는 것을 밝힌다. 드라마적 허용과 이 들의 배경 설정엔 꽤 타당하고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왜 이 드라마가 왜 그러한 오해를 샀던 것일까. 어쩌면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생활을 당당히 오픈함으로써 따라오는 당시 시대상의 거부감이 만들어낸 오해는 아닐까. 세월이 무려 20년이 지난 후에야 한국에서는 여성의 가방에서 콘돔이 떨어지는 장면(이번 생은 처음이라 中)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위 장면이 등장한 한국드라마에서 처음 이 장면을 본 나로서는 그 부분이 꽤 강렬하게 남았는데, 이후 섹스 앤 더 시티 시즌1의 1화에서 그와 아주 유사한 장면이 나오자 어쩌면 이는 작가가 심어둔 오마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처럼 무려 20년도 더 된 드라마가 지금의 사회상과 제법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그만큼 진보적이었다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만큼 현실이 보수적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 드라마는 30,40대 여성들이 함께 품는 삶의 의문과 우정 역시 함께 다룬다. 미혼과 기혼 사이에서 오는 삶의 갈림길, 의도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불임과 암으로 인한 아픔, 노화로 인한 고민 등. 캐리 브래드쇼의 역할을 맡은 사라 제시카 파커가 시즌 3의 제작을 맡은 이후 자유연애주의자인 사만다에 대한 이야기가 심도 있게 그려지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으나 그 간극을 배우 킴 캐트럴이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온전히 소화해냈다. 네 주인공이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때때로 충돌하기도 하나 이를 통하여 각기 다른 성향의 여성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유튜브 '무비건조'에서 이화정기자는 친구 넷이 모이면 MBTI처럼 각각의 캐릭터에 자신을 대립해보는 일이 꽤 재밌었다며 말한 바 있다. 사람을 16가지 성격유형으로 나눈 이 검사처럼, 여자들에게 <섹스 앤 더 시티> 속 주인공들은 나이면서 내 친구이기도 했다.


사실 위 드라마가 나에게 좀 더 특별히 다가왔던 이유는, 메인 캐릭터의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맥북을 켜고 창가에 앉아 칼럼의 주제를 타이핑 치며 극이 시작되는데 그 장면 자체가 작가를 꿈꾸는 30대 싱글여성인 나에게는 몹시 로맨틱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캐리처럼 온전히 나만의 아파트를 갖진 못한 신세이지만 언젠간 나 역시 그녀처럼 창가에 앉아 글을 쓰는 삶을 살겠노라 절로 꿈꾸게 된다. 곽정은 작가가 자신의 30대엔 캐리 브래드쇼가 롤 모델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는 글 쓰는 여자들이 가진 어떤 로망이 아닐까. 캐리가 다수의 남자와 연애를 하고 뉴욕에서 구두를 사모으는 것이 아니라.


캐리는 유독 사랑에 휘둘리며 극 중 가장 많은 남자들과 진중한 릴레이션쉽을 가졌다. 캐리의 그런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온전히 미워할 수는 없었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면은 네 주인공 모두 사랑을 찾은 동화적 결말이 아닌, 패션쇼에서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벗겨진 한쪽 신발을 뒤로하고 꿋꿋이 걷던 그녀의 모습일 것이다. 나 역시 섣불리 벗겨진 구두 한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절름발이로 걸을지어도 미처 다 걷지 못한 런웨이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환하게 미소 지으며 패션쇼를 마쳤던 캐리의 어느 날처럼. 그 장면이 내 인생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동화가 되기를 바라며.


*위 글의 제목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는 남궁인,이슬아 작가의 책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에서 차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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