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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0. 2021

<이터널스> 마블판 외계문명설의 시적 표현

테루님의 브런치 글(이터널스, MCU식 문명사 (brunch.co.kr)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케빈 파이기는 MCU를 현대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실제 마블의 원작에서는 그의 이러한 포부를 실현시킬만한 다양한 신적인 존재들이 존재했고, 그는 공고히 영웅들의 서사시를 그려내 갔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간 페이즈 3까지의 인물들이 신화에서 끊임없이 시련에 빠지던 인류에 가깝다면 이터널스는 그 시련 위에 관망하는 자세로 임하던 올림포스의 신들과도 같다. 그런 면에서 최근 개봉작 <이터널스>의 감독 클로이 자오는 어쩌면 가장 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기원전 셀레스티얼 아리셈은 데비안츠의 무분별한 지적생명체(인류)의 살상을 막고자 지구로 이터널스를 파견한다. 이들은 7천년 간 다양한 인류문명의 발전을 도우며,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현재는 존재를 숨긴 채 인류와 함께 기거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 말살된 줄 알았던 데비안츠가 다시 부활하여 인류를 포함하여 이터널스를 공격하자 세르시와 스프라이트, 이카리스는 나머지 이터널스 멤버들을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영화 <이터널스>는 초기 어벤져스 멤버들의 퇴장 뒤 본격적인 MCU의 새로운 서막을 여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앞서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사실상 <아이언맨 1>과 <퍼스트 어벤져>와 같이 비긴즈류에 가깝고, <블랙위도우>는 원년멤버의 헌정영화에 가깝다. <이터널스>의 작품적 위치는 <어벤져스>와 유사한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서는 무려 10명이나 되는 주역들이 때로 데뷔하기 때문이다. 다만 큰 차이점이 있다면 솔로무비로 공고히 서사를 쌓아 올려 기틀을 마련했던 <어벤져스>와는 달리 <이터널스>는 관객들에게 불현듯 등장한다. 마치 극 중 인류에게 이터널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등장하였듯이.


바로 이 지점이 <이터널스>가 관객들에게 호불호를 남기며 기존의 마블팬인 자와 아닌 자로 구분 짓게 만드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최근 개봉한 <듄> 역시 원작소설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영화를 관람한다면 '이게 도통 무슨 이야기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데 영화 <이터널스>도 그와 같은 단점을 공유한다. 마블 진성팬인데다가 MCU사가의 모든 작품을 다 챙겨본 나로서는 오랜만에 등장한 셀레스티얼과 핑거스냅, 블립현상에 관한 이해도가 높았지만, 이 작품으로 처음 마블을 입문하려는 자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최근 <노매드랜드>로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클로이 자오 감독이다. 그의 기존 작품들과 연출 스타일을 고려해본다면, 이 영화는 애초에 오락영화로서 마블을 입문하려는 관객들에게는 그저 <듄>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오로지 마블팬의 입장으로서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기존의 마블과는 결이 몹시 다른 서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케빈 파이기가 앞서 밝혔던 MCU를 현대적 그리스 로마 신화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클로이 자오는 충실이 실현해낸 듯 보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제외하고 지구 내부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던 페이즈3까지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MCU의 앞선 행보를 위한 하나의 출사표와도 같아 보인다. 비록 지구의 황량한 사막 도시의 동굴에서 시작하였지만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결국 범우주적이라는 하나의 결단과도 같이 보인다고나 할까. 마블영화전문 유튜버인 김용두는(용두의마블 - YouTube) 그의 라이브 방송에서 신화 그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몹시 재밌게 볼 영화라 말한 바 있다. 영화를 다 관람하자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영화 <이터널스>는 어쩌면 바로 앞전에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보다 더욱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일지 모른다. 샹치는 중국에 대한 관객들의 어떤 우려와 편견을 재미로 부수는 작품에 가까웠다면 <이터널스>는 MCU 그 자체만으로 기대감이 큰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겼을지 모르는 작품인 것이다. 이미 MCU의 작품들은 작품 하나가 갖는 개별적인 작품성보다는 마블영화라는 왕관의 무게함께 견뎌야 한다. 이 영화를 MCU의 작품 중 하나로 본다면 꽤 그래도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잘 이행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마블영화를 이제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높은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 다소 의아해진다. 게다가 기존 MCU작품들이 오락영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던 마블식의 유머는 꽤 제거되어 있다. 이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자,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은 엔딩크래딧을 꼽고 싶다. 모든 인간의 문명사가 이터널스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을 다양한 문화유산으로 표현해낸 감독의 재치가 돋보인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마블판 외계문명설의 시적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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