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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Dec 13. 2021

<연애 빠진 로맨스> 연애와 사랑이란 동음이의어

너가 나에게 대상에서 상대가 되었을 때

어릴 때에는 연애와 사랑은 동음이의어인 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연애 중인 상대와 나누는 감정이 사랑일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번의 만남을 직·간접적으로 겪어보니 연애와 사랑은 결코 하나의 뜻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나와 연애하는 상대가 나에게 품은 감정이 고작 호감 임을 깨닫던 순간도 더러 존재했다. 그 후 입버릇처럼 나는 이렇게 친구에게 말했다. 때때로 나는 고달픈 감정노동이 배제된 연애만 하고 싶다고.


이제 곧 서른을 코 앞에 둔 자영(전종서)은 별생각 없이 깔게 된 데이팅어플에서 잡지기자인 우리(손석구)를 만난다. 사랑이 거세된 가벼운 스킨쉽이 목적이었던 그녀와 다르게 우리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녀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가 데이팅어플을 하게 된 이유는 사실 어쩌다 떠맡게 된 기사가 목적이었음을 말하지 못한 채, 그녀가 사실은 그의 취재원임을 먼저 스스로 밝히지 못한 채.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어느 작품보다도 연말 극장가가 어울리는 마음 편히 볼 멜로영화이다.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서늘하게 관통하는 <남과 여>와는 다르게, <연애 빠진 로맨스>는 겨울의 장판과도 같은 따뜻함을 담았다. <버닝>부터 <콜>까지 무난하지 않은 강렬한 연기만을 선보였던 전종서배우의 실생활연기는 편안하면서도 재기발랄하다. 더불어 은근한 매력으로 <멜로가 체질>에서 멜로연기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손석구배우는 그 특유의 찌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매력을 제법 잘 살려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가장 보통의 연애>의 뒤를 이어 오랜만에 한국영화계에 나온 잘 만들어진 멜로영화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연애 빠진 로맨스>는 젊은 층들 사이에서 꽤 구미를 당길만한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현대 시대상을 적절히 영화에 녹여냈다. 신원미상의 누군가를 우연히도 만나 벌어지는 로맨스가 굳이 바다를 건너 먼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이제는 핸드폰으로 만날 수 있는 현재를 반영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판타지에 가까운 이 영화를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 품은 소망을 아름다운 동화로 풀어내서는 아닐까. 자영의 친구처럼 우려와 동시에 토막살인 뉴스가 먼저 떠오르는 데이팅어플에서조차 누군가는 인연을 만난다. 우리는 대개 좋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어쩌면 나에게 맞는 짝이 진실로 나타날지 몰라'라는 기대를 가슴속 저 밑바닥에 감추어 놓는다.


어쩌면 평범하디 평범한 극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최근 높은 예매율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동화 같은 사랑영화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따위는 필요 없지만 스킨쉽은 하고 싶다는 자영의 속마음엔 사실 진실로 사랑하고 싶다는 열망이 숨어있다. 그저 신기한 대상으로만 자영을 지켜보던 우리에게 어느새 그녀는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어버린 상대가 되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외로운 척 연애만 하고 싶은 양 으스대면서도 사랑을 꿈꾼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한 발을 빼놓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두 발 모두 이미 잠긴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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