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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28. 2021

<팔콘 앤 윈터 솔져> 결핍된 인간의 성장기와 킬몽거

영화 <블랙팬서>를 두고 한 유명 평론가는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아프리카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하였다. 실제로 <블랙 팬서>에서 극 중 킬몽거는 끊임없이 범아프리카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에서 인종차별로 고통받는 흑인들을 구원해야 한다며 주장하였다. 실 인물인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에서 차용한듯 보이는 이 두 캐릭터는, 영화 <블랙 팬서>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며 영화 밖으로는 많은 흑인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팔콘 앤 윈터 솔져>는 블랙 팬서의 뒤를 잇는 킬몽거의 못다 이룬 꿈이자, 결핍된 인간이 끝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완다 비전>의 뒤를 이어 공개된 <팔콘 앤 윈터 솔져>는 <어벤져스 : 앤드게임>의 결말에서 스티브에게 방패를 물려받은 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샘 윌슨이 캡틴 아메리카의 자리를 거부하고 방패를 정부에 기증하였으나, 정부는 현직 군인 중에서 훈장을 3개나 받은 존 워커에게 캡틴 아메리카의 지위를 부여한다. 스티브의 뜻을 저버린 샘에게 화가 난 버키, 그리고 흑인으로서 미국을 대표하는 백인 영웅의 뒷 자리를 이어야 한다는 괴리감에 방패를 들지 않은 샘,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던 이가 갑자기 전국민적 영웅의 무게를 견뎌야하는 상황에 놓인 존. <팔콘 앤 윈터 솔져>는 이렇게 세 사람이 각자의 십자가를 견디고 성장하며 극을 전개한다.


앞서 말한 <블랙 팬서>처럼 <팔콘 앤 윈터솔져>는 미국에서 사는 흑인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큰 골자 극을 전개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블랙 팬서>는 범아프리카주의라는 굵직한 시선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캐릭터가 중심이었다면, <팔콘 앤 윈터솔져>는 존 워커라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보다 다양한 주제를 극으로 끌어온다. '캡틴아메리카'라는 고귀하고도 신성시되는 영웅의 뒷자리를 사회적시선으로 거부한 이와 사회적시선으로 인한 중압감에 사로잡힌 떠맡긴 자는 그렇게 각자의 갈림길을 찾는다. 더불어 흑인으로 슈퍼솔져 혈청을 맞았지만 실험체로서 갖은 고초를 겪고 역사에 뭍힌 아이샤 브래들리를 등장시켜 드라마 밖에서 존재하는 흑인시청자들의 공감과 연대를 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블랙 팬서가 태초의 흑인들에게 부여된 히어로에 가깝다면 팔콘의 캡틴 아메리카는 최초의 미국인 흑인 히어로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빌런으로 등장하는 플래그 스매셔의 리더인 칼리 모리건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아쉽다. 그녀가 10대 소녀라는 것은 어쩌면 샘 윌슨이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포기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으나, 빌런으로서의 임팩트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다. 플래그 스매셔라는 슈퍼솔져 혈청을 맞은 이들 역시 위압감은 느껴지기는 커녕 다소 우왕좌왕하는 듯 보인다. 빌런의 서사가 제대로 쌓여있지않아 그들을 연민하는 것도 쉽지않다. 연민과 공포가 존재하지 않은 빌런은, 그렇게 극 중에서 악당이라는 역할만 수행한 채 퇴장할 뿐이다.


극 중 샘이 끝끝내 슈퍼솔져 혈청을 맞지 않는 것은 어쩌면 MCU에서 거대한 스티브 로저스의 존재감을 오로지 새로운 인물로 써내려가기 위한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윈터솔저였던 버키의 죄책감과 고뇌에 관하여 서사가 부족한 것이 다소 아쉽다. 또한 존 워커를 통하여 완벽하지 않은 한 인간이 자신만의 영웅서사를 새롭게 쓰려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공감을 느낀다. 완벽한 선임의 후임이 되는 일은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언제나 직면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그 길목에서 선택해야한다. 캡틴아메리카와 팔콘의 정체성을 모두 버리지 않고 새롭게 탄생시킨 샘처럼, 그 길을 끝내 버리고 새로운 길을 택했던 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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