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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08. 2022

<호크아이> 히어로라는 유산을 물려주는 방식에 관하여

마블에서 내놓은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어벤져스의 활약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혈청을 맞아 슈퍼솔져가 된 캡틴아메리카나, 애초에 천둥의 신으로 불리는 토르나 철갑을 두르고 싸우는 아이언 맨에 비하여 비중도 적고 이렇다 할 서사도 부족한 호크아이에 대해. 캐릭터만 놓고 보자면 그와 비슷할지 모를 블랙위도우는 사실상 해당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글로벌한 인지도 덕분인지 카메라가 주시하고 있지 않아도 워낙 태가 났지만, 호크아이는 묵묵히 자신 앞에 놓인 적을 향해 열심히 화살을 쏘는  고독한 궁수와도 같아 보였다. 오로지 혈혈단신 인간의 몸으로 천둥의 신과 나란히 어깨를 겨누는 그런 호크아이가 마블 팬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아픈 손가락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수년간의 홀대에 대한 보상을 하듯이 디즈니플러스는 호크아이의 단독 시리즈물을 내놓았다. 영화 <블랙 위도우>보다는 조금은 친절하고 다정한 세대교체물로.

숭고한 희생을 뒤로하고 타노스의 군대가 물러가자 세계는 다시 평화를 찾은 듯 보였다. 비록 한 남자가 그간의 세월을 모조리 몸으로 부딪히고 견디며 얻은 상흔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진 못했지만. 어벤져스의 원년멤버인 호크아이 클린트 바튼은 그렇게 자신의 흑역사인 로닌을 한편에 묻어둔 채 애써 가족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한 연말을 맞이해보려 노력해본다.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코스튬을 입고서 영웅들의 활약기를 그리는 뮤지컬을 보고 옛 동료가 떠올라 맘 편히 웃을 수 없음에도. 그런 그의 눈앞에 어릴 적 그 덕에 목숨을 건진 호크아이 바라기 케이트 비숍이 등장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히어로라는 왕관을 쓰게 된 클린트 앞에, 진정한 히어로를 꿈꾸는 한 젊은 청년이.


드라마 <호크아이>는 영화 <블랙 위도우>와 매우 명확한 목적을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 꽤나 큰 차이점을 보인다. <블랙 위도우>가 팬들에게 원성을 들을 만큼 차세대 히어로의 데뷔무대와도 같았다면 <호크아이>는 우아한 즉위식과도 같다. 영화와 드라마는 플랫폼의 차이를 감안해야겠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사회적 메시지가 욱여져 제대로 버무려지지 못했던 <블랙 위도우>와는 다르게 <호크아이>는 인간으로 분류되는 히어로들이 갖는 고뇌와 번민, 그리고 차세대 히어로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단순 명료한 주제를 향해 올곧게 돌진한다. <블랙 위도우>가 그녀가 아니어도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이 영화를 관통한다면, <호크아이>는 오로지 로닌이었던 호크아이 그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거대한 차이점을 갖는다.


혈청을 맞지 않은 히어로가 차세대 어벤져스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된 팔콘과 그 궤를 같이한다. 다만 새로운 호크아이로 활동할 케이트 비숍이라는 10대 소녀가 갖는 명랑하고 쾌활한 이미지가 극의 분위기를 조금 더 가족적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케이트와 비스무리하게 아버지 뻘인 클린트는 마치 유사부녀관계를 보이며 서사를 쌓아간다. 이는 마치 피터(스파이더 맨)와 토니(아이언 맨)를 보는 듯하다.


그렇게 호크아이는 자신을 옥죄였던 과거에서 스스로 벗어나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동경하며 성장해온 히어로 지망생에게 영웅의 자리를 서서히 물려준다. 한 기관의 무기가 되어 살아온 자신과는 다르게, 스스로 영웅의 삶을 부여한 자유롭고도 용감한 한 젊은 이에게. 과거로 돌아가 영웅이 아닌 한 명의 평범한 남자로서의 삶을 선택하였던 스티브처럼.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어벤져스의 원년멤버들은 서서히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활약을 보고 자란 관객들은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 들이 선택한 다음 세대들을 향해 응원할 뿐이다. 가까이 보면 영화 속의 이야기 같고, 멀리서 보면 현실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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