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들리지 않아 아름답다. 때때로 이 말은 그때에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끝없이 되새기는 자기 암시이자,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회피가 뒤섞인 처연한 자기합리화로 분한다. 영화 <화양연화>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아름다움과 지켜내지 않음으로써 지켜낸 수많은 우리의 선택에 관하여 말한다.
같은 날 동시에 이사를 오게 된 첸 부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우연히 자신의 배우자들이 서로 불륜 중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두 사람은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향해 서서히 호감을 품는다. 애써 그들과 다르기를 희망하며 이어지는 두 사람의 밀회 속에서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잠식되어간다.
영화 <화양연화>는 홍콩영화에 대한 관심이 전무한 사람이라 할지어도 제목만큼은 들어본 영화일 것이다. 2015년 BTS는 위 영화의 제목을 따서 앨범제목을 지었을 만큼 이 영화가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 유명한 수록곡 'Yumeji's theme'를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손에 꼽힐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의 사자성어 화양연화라는 제목과 달리 극 중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자를 향한 배신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도덕적인 윤리 사이에서 더는 선을 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제목은 돌이켜 보면 그때가 아름다웠음을 깨닫는 미래의 화자가 붙인 처연한 시선일 것이다.
영화 비포시리즈가 기어코 현실로 가져온 사랑의 진화과정이라면 <화양연화>는 철저히 그 반대의 이야기라 볼 수 있겠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 선택으로 인하여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다웠던 환상의 영역에 머문다. 둘의 오늘을 지켜내지 않음으로써, 둘의 어제를 지켜낸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한 말 한마디를 허공에 보낸다. 만약에를 상상하는 어떤 시각적인 장면이 없이 그저 두 사람의 목소리만이 스크린을 가득 매운다. 이후 차우는 수년이 지나 앙코르와트 유적지에 자신의 감정을 묻는다. 그의 혼잣말은 누구도 듣지 못한 채로 사장되고, 그 위로 덮인 풀들은 자라 말의 무덤을 만든다. 그렇게 들리지 않은 어떤 말은 아름다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