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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10. 2022

<화양연화> 어떤 말은 들리지 않아 아름답다

어떤 말은 들리지 않아 아름답다. 때때로 이 말은 그때에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끝없이 되새기는 자기 암시이자,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회피가 뒤섞인 처연한 자기합리화로 분한다. 영화 <화양연화>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아름다움과 지켜내지 않음으로써 지켜낸 수많은 우리의 선택에 관하여 말한다. 

같은 날 동시에 이사를 오게 된 첸 부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우연히 자신의 배우자들이 서로 불륜 중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두 사람은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향해 서서히 호감을 품는다. 애써 그들과 다르기를 희망하며 이어지는 두 사람의 밀회 속에서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잠식되어간다.


영화 <화양연화>는 홍콩영화에 대한 관심이 전무한 사람이라 할지어도 제목만큼은 들어본 영화일 것이다. 2015년 BTS는 위 영화의 제목을 따서 앨범제목을 지었을 만큼 이 영화가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 유명한 수록곡 'Yumeji's theme'를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손에 꼽힐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의 사자성어 화양연화라는 제목과 달리 극 중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자를 향한 배신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도덕적인 윤리 사이에서 더는 선을 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제목은 돌이켜 보면 그때가 아름다웠음을 깨닫는 미래의 화자가 붙인 처연한 시선일 것이다.


영화 비포시리즈가 기어코 현실로 가져온 사랑의 진화과정이라면 <화양연화>는 철저히 그 반대의 이야기라 볼 수 있겠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 선택으로 인하여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다웠던 환상의 영역에 머문다. 둘의 오늘을 지켜내지 않음으로써, 둘의 어제를 지켜낸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한 말 한마디를 허공에 보낸다. 만약에를 상상하는 어떤 시각적인 장면이 없이 그저 두 사람의 목소리만이 스크린을 가득 매운다. 이후 차우는 수년이 지나 앙코르와트 유적지에 자신의 감정묻는다. 그의 혼잣말은 누구도 듣지 못한 채로 사장되고, 위로 덮인 풀들은 자라 말의 무덤을 만든다. 그렇게 들리지 않은 어떤 말은 아름다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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