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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r 02. 2022

<더 배트맨> 개인의 업이 사회로 확장되는 그 순간

배트맨이 영웅이기 이전에 탐정이던 때를 그리며

어느덧 직장인 2년 차에 접어든 B씨는 최근 들어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스스로 자원하여 들어간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도한 프로젝트에 점점 확신을 잃어갔고, 존경하리 마지않던 사수는 퇴직 후 좋지 못한 평판이 들려온다. 지금 나와 함께 업무를 나누어 맡은 이 팀원 역시 믿을만한 동료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는 그저 시작한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히어로무비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영화 <더 배트맨>이 최근 개봉하였다. <더 배트맨>은 배트맨이 이제 막 고담시의 자경단 역할을 맡은 2년 차에 벌어지는 연쇄살인극을 다룬 이야기로써, <다크나이트 3부작>이 아닌 영화 <조커>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유튜브 채널에서 위 영화는 <조커>에 대한 배트맨의 부름이라는 의견을 내었다. 이 영화는 필히 그의 말처럼 <조커>의 성공 이후 DCEU(DC 확장 유니버스)에서 독립된 새로운 서사의 연결이자, 또 다른 시작이라 볼 수 있겠다. (HBO MAX에서는 위 영화에 등장한 펭귄, 캣우먼, 고든 경위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DC 상호의 유래가 자사의 인기시리즈인 <디텍티브 코믹스>인 것과 더불어 배트맨의 데뷔작이 <디텍티브 코믹스 27호>인 것을 고려해본다면 영화 <더 배트맨>은 탐정영화라는 원작의 기원에 충실한 추리물일 것이다. 배트맨을 한 명의 슈퍼히어로 내지는 초인으로 다루며 액션 활극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무겁고 침체된 분위기가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 점은 마블과 대조되는 DC의 가장 큰 매력이자 차이점이다. 시종일관 안개가 걷히지 않을 것 같으며 범죄가 들끓고 공권력이 파괴된 고담시에서 그는 아직 어둠의 기사이기보다는 탐정이 더욱 어울려 보인다. 그러니까 <더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이 어둠의 기사가 되기 전 탐정이던 때의 이야기이다.

<더 배트맨>은 앞서 배트맨의 기원이나 활약을 다룬 무수한 작품들과는 차별점을 두기 위하여 이제 막 자경단 활동을 시작한, 고든이 경위이던 때의 이야기를 영리하게 차용하였다.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라는 고담시의 왕자역할을 스스로 분리하기 이전의 시점을 다룸으로써 영화 <더 배트맨>은 빌런보다는 배트맨에게 더욱 집중하는 영화를 만들어내었다.


더불어 극 중 브루스 웨인은 아버지의 과거를 캐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과정을 겪을 인간과 슈퍼히어로의 간극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에게서 배트맨이라는 역할은 그저 브루스 웨인의 복수를 위한 개인적인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더 배트맨>은 한 사람의 업이 개인을 넘어 사회로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그 업이라는 것이 트슈트를 입어야만 완성되는 일의 차이라는 것 뿐.


더불어 이 영화가 호불호로 나뉘고 있는 지점인 '현실적인 빌런'에 관해선 느와르를 목적으로 둔 감독의 의도가 적절하게 반영되었다생각이 들었다.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에 비하여 꽤나 현실적인 배트맨이지만, 그렇기에 추리물이라는 원작의 정서가 최대한 잘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극 중 펭귄과의 카체이싱 시퀀스는 이 영화를 대표하는, 가장 잘 만들어진 장면일 것이다. 전복된 펭귄의 차를 향해 걸어가는 배트맨을 펭귄의 시선에서 마치 박쥐처럼 묘사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압도해버린다. 



*글의 서문은 이동진의 [더 배트맨] 가이드 리뷰 - YouTube 위 영상 중 이동진기자님의 가이드 리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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